불교(佛敎)와 사회복지(社會福祉)(태양회뉴스 17호-2008년) > 나눔정보

본문 바로가기

회원메뉴

쇼핑몰 배너

불교(佛敎)와 사회복지(社會福祉)(태양회뉴스 17호-2008년)

관리자 2018-02-16 (금) 12:34 6년전 38916  

불교(佛敎)와 사회복지(社會福祉)

7348a10d18afe77f2fe12400cdd8d5b8_1518751481_4105.png

 태양회 이사장 高橋公純


나와 봉사활동의 원점(原點)

나의 청춘시대는 극히 비참한 매일이었고, 만족하게 직장을 얻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며, 만족하게 배를 채울 수 없는 배고픈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음식은 남들과 같이 먹을 수 있으면 되고, 직장을 가지되 그 직장 일이 단순히 월급을 받아 자기 행복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같이 가난한 사람이나 희망을 잃은 사람과 더불어 살며 감사 받는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즐거운 인생이 될 것인가.」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지내왔는데, 그 꿈이 후년의 봉사활동과 연결이 되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불교에 인연을 맺은 나는 온 정열을 불교에 쏟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믿고 있는 「올바른 불교」를 배워 그대로 실천하였지만, 올바른 불교를 가진 사람이 올바른 교리를 믿고 올바른 교리를 홍교하는 것만으로 만족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7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찌바나학원(橋學園)」을 창립한 같은 불교계의 도이토미(土井登美)여사는 그 학원의 교풍을 「올바른 자가 되려거든 강해져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와 같이 올바른 자는 강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부드럽게 그리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불교에서 설(說)하는 자비(慈悲)의 마음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조금 더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음식은 적당히 먹을 수 있으면 되고, 남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자」는 생각이 현재 소규모이지만 사회봉사와 연결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포식(飽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음식이 너무 풍부하여 다 먹지 못하고 남아돌기 때문에 음식의 고마움을 모르는 시대가 선진국(先進國)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40년 전의 일인데, 처음으로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일류 호텔의 결혼 피로연(披露宴)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멋지게 정장을 한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결혼식 피로연은 독특한 분위기로, 차례차례로 나오는 호화스러운 요리를 절반도 먹지 못했습니다. 500명이 참석한 그곳은 거의 250명분의 호화스러운 음식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되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아사(餓死)하는 아이들이 매일 삼천 명이 나온다는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손도 대지 않고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음식을 저렇게 굶주린 아이들에게 준다면 많은 생명이 구해질 수 있을 터인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그때 들었습니다.


내가 제일 처음 사회복지(社會福祉)를 한 것은 30대에 일본에서 시작했습니다. 매부(妹夫)가「한센씨병 수호회」즉, 나병환자를 보살피는 단체를 설립하고 있었기에 그 모임의 강연을 부탁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나는 생활의 여유가 없어서 자동차는 월부로 매입한 30만 엔의 중고차였는데, 겨울에는 난방이 되지만 여름에는 에어컨이 되지 않았고, 금방 엔진이 멈출 것 같은 고물차였는데 나는 그 자동차로 약속한 장소에 갔습니다.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나병환자는 300만 엔 이상 되는 일본에서는 최고급 자동차를 타고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나병환자에 대한 사회복지 제도는 조금 완벽하게 되어 있어, 주거지(住居地)와 의료비(醫療費) 모두가 무료이고, 생활은 보장 되어 있으면서 국민연금까지 받고 있으며, 그 때 마중 나온 사람은 원래 군인이었기 때문에 군인의 은급(恩級)을 받고 있었습니다. 생활은 완전히 보장되어 있으면서 그 외의 연금이나 은급까지 받고 있으니까 생활의 여유가 있어 거의 다 저금할 수 있을 정도로서, 강연(講演)하는 나보다 훨씬 더 부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 가서 나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하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고 말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나는 한 가지 배웠습니다.
잘난 체 하거나 뽐내지 말고 먼저 나병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사회복지를 염두에 두는 사람은 먼저 그 분들을 이해하는 마음가짐이 사회복지의 원점(原點)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병환자 중에는 하루 밤사이에 손에 격통이 일어나며 손가락이 구부러지고 그 손가락에서 피가 나오므로 장갑을 끼고 있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나는 어느 날 일본의 나병환자 집회소에 매부(妹夫)와 같이 방문 했을 때, 구부러진 손에 장갑을 낀 사람이 접시에 주먹밥을 담아 와서 「점심입니다.」하며 테이블에 놓아 주었습니다. 나는 그 때 이 사람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직감(直感)에 이 주먹밥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순간적으로 마음이 얼음같이 굳어버렸지요. 좀처럼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 나를 보고 매부는 귓속말로 「고우쥰상, 이 주먹밥을 웃으면서 ‘맛있다, 맛있다’고 먹어주는 것이 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그 말을 들은 나는 「맛있습니다. 상당히 맛이 좋습니다.」하며 진땀을 흘리면서 먹은 일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는 눈만 웃고 있었지 입은 비틀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후 나는 한국의 나병환자가 살고 있는 소록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나병환자 병사(病舍)에서 우리들에게 식사와 차(茶)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와 차를 마시고 음식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는데, 나와 함께 동행 했던 한국 사람들은 음식에 손을 대지 못했고,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보고 한국 사람들은 놀라면서 더욱 더 나에게 관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는 이미 사회복지의 원점은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태연하게 접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또 한 가지 한국에 대한 사회복지의 원점이 되는 것이 나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약 40년 전의 일이지만, 어느 날 무심코 서점에 들렀습니다. 그곳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당시 한국의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저서인 「민족(民族)의 저력(底力)」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일국의 지도자니까 어딘가 배울 곳이 있을 것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 책을 사서 읽어보고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일본 제국이 한국을 합병하여 36년 동안 얼마나 한국 사람들에게 깊은 슬픔과 뼈저린 고생을 시켰는지 나는 이 책을 읽어보고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나는 그때 당시  불교를 추구하는 마음이 고조되어 이미 출가한 몸이었습니다. 그 불교신앙을 통하여 나는 일본 민족의 우수함과 일본 사람으로 태어난 자랑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나의 아버지나 조부 나이 정도 되는 일본 사람이 이토록 심한 일을 한국인에게 했단 말인가?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아직 일본에는 한국에 관한 책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서점에 갈 때 마다 한국에 관한 책이 보이면 사 들이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반년이 지날 무렵 한국에 관한 책이 약 30권정도 되었을 때, 일의대수(一衣帶水), 즉 옛날에는 한국과 일본은 땅이 연결되었을지도 모른다, 태고(太古)의 옛날부터 일제(日帝) 36년을 지나 현대사(現代史)까지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들에게 무슨 행동을 했는가? - 전답(田畓)에 관하여, 산림(山林)에 관하여, 식량에 관하여, 이름에 관하여, 군정(軍政)에 관하여... - 그것을 생각하면 가령 나의 전 재산을 바친다 해도 제갈공명이 말한 구우(九牛)의 일모(一毛)도 안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한국에 대한 사회봉사 활동을 하게 된 원점은 여기에도 그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 구우의 일모에 대하여 「서울시장상」「서울 사회복지협회장상」「보건복지부장관상」등을 주셨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이 황송할 뿐입니다. 봉사활동 하는 사람의 정신은 아무리 열심히 많이 해도 영예(榮譽)를 바라거나 칭찬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처음 구상했던 것 보다 아직까지는 작은 규모이지만, 이제 조금씩 봉사(奉仕)라는 이름의 새싹이 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교 신앙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사회복지는 불교신앙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왜 당신은 사회복지 등을 하고 있는가? 복지를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라고 이런 질문에는 나는 그저 쓴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오늘은 지면상이나마 조금 그에 대한 대답을 해 보겠습니다.


불교에 사회복지(社會福祉) 사상이 있습니까? 불교에 복지 사상이 「있다」고 말하는 것 보다 오히려 사회에 대한 복지, 사회에 대한 봉사는 불교사상에서 나온 것이며, 불교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법화경(法華經) 비유품(譬諭品) 제 3에 「삼계(三界)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인데, 생물이 살 수 있는 이 세상은 안심,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으며, 마치 불 난 집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인간의 고통이 충만해 있습니다. 이 삼계는 부처님이 가진 세계로서, 그 삼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부처님의 자식이다. 부처님의 자식이 고통 받고 있는데 그것을 구하는 것은 부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고 설해져 있습니다. 이 「삼계 안전한 일 없고 더욱 화택(火宅)과 같다.」고 하는 경문 중에 부처님이 구제하는 자는 법화경(法華經)을 신봉(信奉)하는 사람만 구제하거나 불교 신앙자만 구제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삼계(三界)의 중생은 모두 부처님의 자식이니, 부처님은 모든 중생들을 빠짐없이 구제합니다. 불교에서 설하는 사회복지사상의 원전(原典), 근본이념(根本理念)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중생을 구하려는 것은 법화경에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유마경(維摩經), 승만경(勝鬘經), 금광명경(金光明經), 반야경(般若經), 화엄경(華嚴經), 열반경(涅槃經) 등에서도 볼 수 있고, 그것을 실천하는 장소는 당연히 사원(寺院)이며 실천하는 사람은 승려(僧侶)이었습니다.


한번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현재보다 문화와 의학이 많이 뒤떨어져 있던 옛날 그 시대에, 홍수나 가뭄이 계속 되면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지고 병자가 속출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 것은 사원이었습니다. 빈자에게 무료로 음식을 베풀고, 무료로 병인을 간병하며, 무료로 학문을 가르친 곳, 즉 사원은 옛날 유일한 일대문과(一大文科) 센터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양(梁)나라의 무제(武帝)에 「무차대제(無遮大齊)」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齊)란 식사를 말하는데, 무료로 대중에게 식사를 베푸는 것, 기간이 없으니까 그것을 「무차(無遮)」라고 말합니다.


이 양나라의 제(帝)는 스스로 삼보(三寶)의 노예로 되어서 불법승(佛法僧)에게 봉사하여 청소, 잡역을 하여 일반 무차대제를 일생에 몇 번이나 베풀고 불교 흥륭에 노력하였으니, 구세(救世) 보살의 재탄이라고까지 말하였다.


그러면 왜 그러한 사회복지를 행하였을까요. 그것이 불교에서 설하는 「복전사상(福田思想)」이기 때문입니다.「부처님은 심는 손과 같으며 중생은 논과 같다.」고 하는 어문(御文)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 속에 행복을 심어가는 손이다. 중생은 그 행복을 받는 논이다. 더욱 더 부처님의 마음을 마음으로 하여 부처님을 대신하여 중생이라고 하는 논에 행복을 심어가는 손으로 되어가는 그곳에 막대한 공덕이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것이 「복전사상」입니다.

그리하여 이 복전사상이 「경전사상(敬田思想)」과 「비전사상(悲田思想)」으로 두 개로 나누어졌습니다. 경전(敬田) 즉 삼보(三寶)를 공경하는 마음에 입각하여 사회복지를 생각한다면 무엇이 생기겠습니까? 그것은 「부처님, 본존(本尊)님을 안치하는 사원(寺院)」 또는 「승려가 거주하는 방사(坊舍)」가 생기는 것입니다.


다조탑사견고(多造塔寺堅固)라고 하는 시대가 있었는데, 사원 건립하는 것이 최대의 공덕으로 이어진다고 하여 사람들은 다투어 사원을 건립하였습니다. 현재도 사원을 건립하는 공덕은 변함없이 나옵니다. 다음에 「비전사상(悲田思想)」인데, 부처님이 이 세상에서 슬프게 느끼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도 할 수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노인이나 아니면 부모에게서 버림받거나 전쟁에 의하여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하여, 현 사회에서 말하는 「노인 요양원」이나 「고아원」의 시설의 발상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또한, 병인(病人)이 생기면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은 없었기에, 「약(藥)」을 제작하여 투여하고 또는 병인을 수용하는 병원을 만들어, 이러한 일을 비전원(悲田院)에서 독립시켜「시약원(施藥院)」으로 만들어 승려가 이것을 담당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전사상(敬田思想)의 실행도, 비전사상(悲田思想)의 실행도 모두 사원 안에서 해왔습니다. 즉 사회복지와 봉사활동은 불교사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원에 거주하는 사람과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뜻을 이어받아 사회복지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을 말하면, 예를 들어 한국 불교는 고려시대에 거의 불교 국가로 되어 불교를 신봉하는 순수한 왕이 계속 왕위를 즉위하였습니다. 태조 왕건(王建)부터 시작하여 많은 왕들은 여러 사원(寺院)을 건립하여 승려에게 공물(供物)을 바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왕실에서 기진(寄進)하므로 사원의 영토는 계속 증가하여 사원의 경제는 윤택해지고, 고리대(高利貸)의 사원이나 상업을 시작하는 사원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불교가(佛敎家)가 불타(佛陀)의 본의(本意)를 망실하였을 때 불교의 타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냉정히 보아 온 사람들은 이조 시대를 만든 왕들이었고, 이조 시대에 들어오면서 사회복지와 봉사활동이 불교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근대에 와서 이와 같은 사회복지는 사원에서 개인의 손에 옮겨지면서 기업화 되어갔습니다.


영리(營利)를 목적으로 한 노인 요양원이나 고아시설에 불교의 복전사상은 없어졌으며, 불교를 신봉하는 우리들은 이 점을 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포토더보기▶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환영"(2)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by 관리자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환영"(2019.3.25.)

워커즈 코프 연합회 서울 태양회 방문&n…
by 관리자

기념행사의 이모저모(2018.8.6.)

행복한 순간의 미소​​​​​​​​​​​​…
by 관리자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식(2018.3.26.)

이사장님,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
by 관리자

[나눔행사] 쌀 기증(2018.2.6.)

[나눔행사] 쌀 기증(노원구 2018.2…
by 관리자

원폭평화전시관 2주년 기념행사(2017.8.6.)

원폭평화전시관 2주년 기념행사봉사단체 태…
by 관리자

(사)평화봉사단 해모음    대표자:고교목남 고유번호 : 778-82-00225 전화 : (02) 934-9828   팩스 : (02) 933-9828   이메일 : csh230@naver.com 주소 :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237다길 16(4층) 후원계좌 : 하나은행 290-910014-95105
Copyright © (사)평화봉사단 해모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