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문화)와 人間(인간)의 고리(輪) - 태양뉴스 5호, > 아름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회원메뉴

쇼핑몰 배너

文化(문화)와 人間(인간)의 고리(輪) - 태양뉴스 5호,

관리자 2018-02-05 (월) 10:29 6년전 1030  

文化(문화)와 人間(인간)의 고리(輪)


내가 한국에 대한 인식을 깊게 갖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27년 전, 東京(토쿄)의 부도심지인 이케부쿠로에 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부도심지에서 제일 큰 서점에서도 한구에 관한 책은 적었었다.


가끔 한국에 관한 책을 발견해서 보면 일본에 대한 怨望(원망)과 일본에서 얻은 어두운 추억, 일본 사람에 대한 非難(비난)으로 넘쳐흐르는 책들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에 와보니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일본 사람 모두가 나쁜 것일까? 나 같은 사람은 그 당시 조선 독립 해방되기 4년 전에 태어났으니까 한국 사람을 괴롭히거나  때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부모나 조부 시대에 저지른 일본의 과실에 대하여 일본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과해야 좋을지 한국에 오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많은 문화의 도움을 받은 나라이다. 그리고 상부상조하던 나라를 중에서도 우호가 제일 두터운 나라였던 것이다.


만약 일본 사람이 사과를 한다면 한국의 발전을 위하여 이번에는 일본 사람이 희생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된다. 일본에 실제로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써 알리는 수밖에 없다.


금후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문화, 예술, 스포츠 등에서 서로 신뢰하고 존경해가면서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밝게 되돌릴 수 있도록 이것저것을 고려해보았다. 그러나 그 실행을 위해서는 일본의 寺院(사원)이나 宗門(종문)의 규제 속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우선 자유의 몸으로 되고 싶어 사원의 住職(주직) 임무를 반환시킨 것이 5년 전, 사원에 있으면 안심, 안전, 안락함이 보증되어지지만 그것보다 한·일 우호의 증진을 위하여 사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삶이 되지 않겠는가?


내가 죽을 때 내 인생에 후회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자유의 몸으로 되었지만 종문이라고 하는 권위나 권력의 뒷받침이 없어지고 나니 예상한대로 몇 번이나 곤란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김대중 씨가 대통령으로 되어 한국과 일본 간의 높은 벽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나로서도 다행이었다.


98년 10월 20일 일본의 대중문화를 개방하는 심의가 한국정부에서 통과되었다. 이것은 대중  가요의 공연과 영화 상영을 인정하고, 레코드, 비디오, TV방영을 단계적으로 인정한다고 하는 방침이었다.


일본 내에서는 이미 가수 이미자, 이성애, 조용필 등이 일본에 와 NHK 홀 등에서 노래 부르고 있었고, 한국의 서예가, 도예가의 작품 전시회 등이 20~30년 전부터 행해지고 있었다.


98년에는 도쿄국립미술관에서 ‘90년대의 한국 미술에서’라는 제명으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한국의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일본의 유명한 곳에서 열리고 한국에서 뛰어난 예술, 문화가 일본 전국의 TV를 통하여 방영되었다.


일본에서는 좋은 곳은 좋다고 하는 관념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한국에서는 가능할 수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벌써 10년, 20년 전부터 일본의 문화와 예술뿐만이 아니고 전기산업, 전자공학, 일본식 식당에서부터 패션에 이르기까지 일본 문화는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었다.


대만의 서점에 가보면 만화의 90%정도가 일본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것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만에서는 일본에서 발매한 그 이튿날에 중국어로 번역되어 서점 앞에 진열되어진다. 그런데 일전에 한국 만화가와 동석할 기회가 있어서 이 점에 대하여 불어 보았다. 그는 ‘60%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과거에 일본의 군사적 침략에서 현재 문화의 침략, 나아가 국가 전체의 침략으로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한국 사람들의 경계심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작년 1월에, 태양회의 신년회를 토쿄 아카사카에 있는 한국 요리점에서 가졌다. 그전에 토쿄에 십 수 년 살고 있었지만 오래간만에 밤거리의 아카사카에 나가보고 깜짝 놀랐다. 아카사카 거리를 몇 발자국 걸어가다 보면 레스토랑, 술집, 식당, 노래방 등의 간판들이 한글로 멋지게 반짝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응?!! 한글이네!!」


아카사카라고 하면 국회의사당이나 대장성 등의 관청 거리 옆에 있는 곳인데 이렇게도 많이 한글이 일본 내 중심가에 침투해 있다, 한편 서울 명동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일본 사람, 일ㅇ본 제품, 일본어 식당, 가라오케, 일본어만 나열되어 있는 곳이 눈에 많이 띈다.


어느 날 일본 TV에 명동이 방영되고 한국의 젊은 여성이 인터뷰하고 있었다. ‘일본 제품을 어떻습니까?’ ‘참 좋습니다’ ‘일본제품 살 때 거리낌 같은 저항은 없습니까?’ ‘좋은 것은 좋으니까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좋은 것은 좋은 것이므로 그러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고 그런 흐름이 98년 10월에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라는 정치적 공식 발표로 이어졌던 것이다.


약 20년 전, 부산의 금정산성 부근에서 내가 약간 일본풍의 군가 비슷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갑자기 할아버지로부터 큰 소리로 꾸중을 들은 일이 있다.


이처럼 일본적인 것은 겨우 이정도의 이유로써도 배척당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지만 드디어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일본문화를 개방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작년 일본의 락 가수인 오오토모 씨가 10곡을 일본어로 불렀다. 올해 ‘아무로/나미애’가 한국에 온다고 한다. 한국 TV에서 아무로는 작은 장소에서는 노래 부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야 많은 사람들이 모이겠지요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작년 9월 10일, 일본의 대중문화 제2차 개방으로 일본의 가요 공연은 2천 석까지 허용되었다.


아무래도 아무로 씨는 이 2천석을 넘지 않을까? 라고 생각된다.


우리 태양회도 작년에는 한국 락 밴드인 ‘시나위’를 일본으로 초청했었고, 금년에는 제2회 한일 다문화 교류를 인천의 인력개발원 강당에서 열고, 6월에는 한일 가라오케강연대회를 도봉구에서 열었다.


한국에 처음으로 오는 일본 사람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의 활기에 넘친 분위기에 놀라고 또 꾸밈없는 한국인의 친절함과 따뜻함에 감동까지 느끼고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일본 茶道會(다도회) 사범께서 고가의 抹茶(말차)찻잔 20여개 외 많은 茶道具(다도구)를 태양회에 기증해 주셔서 태양회는 이 茶道具(다도구) 일체를 가지고 태양회 茶(다)의 교실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다도 선생님께서 태양회 봉사활동을 돕기 위하여 기금도 마련해 주셨다.


이 기금은 일본 태양회로부터 원조를 포함하여 한국의 봉사활동을 위하여 사용되었다.


이러한 조그마한 일본 사람의 친절함이 한국 사람들의 일본인관을 변화시키고 더욱 나아가서 한국 사람과 일본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우호의 축으로 하나하나가 되어주면 다행으로 생각한다.


理事長 高橋公純

 

 


포토더보기▶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환영"(2)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by 관리자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환영"(2019.3.25.)

워커즈 코프 연합회 서울 태양회 방문&n…
by 관리자

기념행사의 이모저모(2018.8.6.)

행복한 순간의 미소​​​​​​​​​​​​…
by 관리자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식(2018.3.26.)

이사장님,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
by 관리자

[나눔행사] 쌀 기증(2018.2.6.)

[나눔행사] 쌀 기증(노원구 2018.2…
by 관리자

원폭평화전시관 2주년 기념행사(2017.8.6.)

원폭평화전시관 2주년 기념행사봉사단체 태…
by 관리자

(사)평화봉사단 해모음    대표자:고교목남 고유번호 : 778-82-00225 전화 : (02) 934-9828   팩스 : (02) 933-9828   이메일 : csh230@naver.com 주소 :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237다길 16(4층) 후원계좌 : 하나은행 290-910014-95105
Copyright © (사)평화봉사단 해모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