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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태양회뉴스 3호- 1999년 2월 2일)

관리자 2018-02-02 (금) 10:44 6년전 4033  

陶磁器(도자기)


삼가 신년의 기쁨을 말씀드립니다.
본년에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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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회 이사장 다카하시 고준


한국에서는 일본의 陶器(도기)를 말할 때, 도자기라고 발음한다. 거년에 나는 이 도자기를 굽는 곳에 몇 차례인가 발길을 옮겼던 것입니다. 高價(고가)인 것들도 있으나 일본에서는 믿기 어려운 것 같은 헐값의 도자기가 일렬로 늘어져 놓여 있습니다.


옛날 이 도자기는 한국이 큰 大자가 붙을 정도의 선배였으나 지금은 일본쪽이 선배의 입장과 같이 돼버린 것입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굽은 곳을 방문했을 때 항아리(단지)에다 무엇인가의 문자를 써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종이에는 자주 쓰고 있었으나 토기(土器)에 쓰는 것은 처음인 것입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 하고 세 가지 네 가지를 생각한 나머지, 그 중 하나로 “異國(이국)의 神(신)은 눈부시게 아름답다.”라고 쓰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4500년 전 맨 처음 한국 百濟(백제)로 부터 불경이 전해졌을 때 불상도 함께 전해져 온 것입니다. 그 불상은 일본 어느 곳에서도 볼 수가 없는 빛남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 일본에서는 유약을 칠해 도기에다 광택을 내는 技法(기법)이 없어 모두가 유약을 바르지 않고 低熱(저열)에 굽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해 異國(이국)의 神(신) 佛像(불상)을 바라보고서 그대로 분부시게 아름답다고 표현한 것일 것입니다.


그 불상을 전해주신 한국에 있어서 내가 처음으로 도기에다 쓴 글자는 “異國(이국)의 神(신)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야말로 어울리는 것이라고 단단히 마음먹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항아리에 그림을 그리는 한국인도 있어 나와 말을 주고받으면서 불과 1분정도로써 새우의 훌륭한 墨畫(묵화)를 그려서 보여주었습니다.


예상 밖으로 모두들 간단하게 쓰는 셈인 것이므로 해 나는 그 뛰어남에 완전히 말려들어가 자신을 잃어버리고 처음인 항아리에의 글씨는 무엇인가의 이유를 붙여서 쓰지 않고 다음 기회라는 것으로 해버린 것입니다.


한국의 고려왕조 도자기는 『靑磁器(청자기)』이며 代(대)가 바뀌어 天下(천하)를 장악한 李王朝(이왕조)는 『白磁器(백자기)가 중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왕조는 고려왕조이 문화를 부정했으므로 이왕조 시대에 한국에서 청자기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대가 흘러가 明治(명치)때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 했을 때 한국에 존재하는 우수한 도자기에 눈길을 돌린 것은 민중문예로써 이름이 높은 유종열 등이었습니다. 유종열등이 한국에 산재하는 도자기를 모아 문화자료관을 만들어서 그곳에 당시의 이왕조 귀인들을 초대하였습니다. 귀인들은 그곳에 장식돼 있는 고려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청자기의 수승ㅎ아마에 감격해 ‘이 자기는 어느 나라 것입니까?’하고 진지한 얼굴로써 물었다고 말합니다. 前時代(전시대)라고 말해 그 문화를 부정하는 것은 두려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무내가다라고 일 켜진 무내가다지고의 젊었을 무렵 처음으로 日展(일전)에 그림이 入選(입선)돼 그 賞金(상금)을 수령하려 갔었습니다. 그가 당도한 집이 한국의 문화자료관을 만든 유종열 씨 댁인 것입니다.


응접실에 대기한 상태에 있던 무내가다는 그곳에 장식돼 있는 하나의 도기에 괴이하게 가슴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토록 훌륭한 도기는 누가 만들었을까?” 예술가는 예술가를 안다는 것이다. 울고 싶을 정도로 감동을 받아 그 그릇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들어온 유종열에게 무내가다는 두려워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이 그릇은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 만든 것입니까요? 어느 분의 작품입니까? 유종열은 빙그레 웃고서, 무내가다군 이것은 유명한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지금부터 4~5백 년 전의 한국의 농민인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었으면 한다든가 예술을 만들려해 이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필요해서 만든 것입니다. 거기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君(군)의 부친께서 만든 식칼도 내안에 꽂아두면 물고기가 닿으면 물고기가 두동강이 됐다고 말하지 않는가, 君(군)의 부친도 훌륭한 민중문화의 사람이었으며 내가 주장하는 民藝(민예)란 그러한 것이란다고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기집이 될 것입니다.』하고 계속 말해온 무내가다지고의 예술에 대한 눈이 크게 열린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去年(거년) 10월 일본에 돌아오니 가고시마의 지인으로 부터 한 장의 팩스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陶工(도공)인 심수관의 초대가 일본에 온지 400년 전이라는 것으로써 한국이천의 도자기를 위시해 사물놀이라는 한국의 고전무용 등을 가과시마에서 1개월 동안에 걸쳐 개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심수관에 대해서 사마료다로씨는 그의 著書(저서)인 “고향은 잊어버리기 어려운 것이니라”에 상세한 것입니다. 도요도미히대요시의 一軍(일군)인 시마쮸고로 부터 무리하게 일본으로 끌려온 심수관의 일행은 4백 년 전 “어느 곳에서든 살아라!”하고 방치 당하였습니다.


한국의 높은 산은 더물고 완만한 구량이 많기 때문일까, 그 한국인의 일행은 “이 언저리가 고향의 산에 닮았다”고해 정착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3백수십년이 지나 공연하게 고교에 입학한 첫날 째 집으로 돌아오니 부와 모는 무엇인가를 예상하는 것 같이 문밖에 서서 나의 자식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셈인 것입니다. 자식은 패인 곳이나 구멍이 많이 생긴 상태로 얻어맞고 의복은 찢어졌고 피투성이가 돼 돌아온 것입니다.


학교에 가면 다른 교실에서 “이곳에 조선인이 있는가?”하고 들어옴으로 “나입니다”하고 대답하면 느닷없이 뒤뜰로 끌어내서 얻어맞았다고 말합니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해 얻어맞은 것입니다.


수관 씨는 펌프가 있는 샘에서 상처를 씻어 주시면서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학교에는 가지 않는다”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부는 “가서 싸움이던 공부 던 일본인에게 지지 않은 인간이 되는 이외 우리들의 살길은 없는 것이다”하고 타일렀다고 말합니다.


부와 모가 문밖에서 자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실은 부도 고교입학의 첫날 째 조선인이라는 단지 그것만의 이유로서 얻어맞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설을 생각해내면서 쓰러져 누어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니 그 심수관씨가 갑작스리 텔레비전에 영출되었습니다.


앗! 엉겁결에 正坐(정좌)해 버렸으나 수관씨는 하나의 도기를 집어내 이것이 400년 전 초대 심수관이 만든 “火借(화차)의 器(기)”(불을 빌리는 그릇)라고 말합니다. 初代(초대)가 일본에 와서 슈마주고로 부터 “무엇인가를 만들라”고 말하여졌을 때 만든 茶腕(다완)이지만 한국의 흙, 한국의 가마였으니 불은 일본의 것, 그러므로 “火借(화차)의 器(기)인 것이다 라고,

그리하여 그해 10월에 한국에서 큰 항아리에 불이 넣어져 한국의 불이 배편으로 일본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불로서 심수관 씨는 한국의 가마에다 불을 지피는 映像(영상)을 나는 나의 일과 같이 감격해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400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겨우 심수관 씨는 한국의 흙, 한국의 가마, 한국의 불로써 도자기를 만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다음에 텔레비전에 비친 것은 市長(시장)이 만들었다고 말하여 진 石塔(석탑)인데 거기에는 韓日友好(한일우호)의 불이라고 조각돼 있었습니다. 400년 전부터 괴롭힘을 계속 당하면서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과연 그 많은 여러 가지 惌念(원념)을 초월하고 우호의 불을 태울 수가 있을 것일까, 그러나 심수관 씨의 얼굴, 말, 행위의 이모저모에는 이 사람 같으면 400년 동안의 원념을 초월하고 한일우호의 불을 태울 수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우리들 태양서클은 本年(본년) 한일문화의 교류로서 한국의 음악가를 일본으로 초청해 한일의 음악회를 열 예정이므로 돼 있는 것입니다.


가고시마현에서 행한 심수관 씨의 400년에 비교한다면 규모는 부끄러울 정도로 적지만 우리들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한일우호와 불을 계속 태워나가지 않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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