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다)의 香(향) 韓國(한국)과 日本(일본)-(태양회뉴스 4호) > 해모음뉴스

본문 바로가기

회원메뉴

쇼핑몰 배너

茶(다)의 香(향) 韓國(한국)과 日本(일본)-(태양회뉴스 4호)

관리자 2018-02-03 (토) 08:18 6년전 4278  

茶(다)의 香(향) 韓國(한국)과 日本(일본)


제1회 한일다문화교류 보고

3dba349c44c43c0fb98362e59661b7a1_1518220183_1866.png
한국 다도 풍경


3dba349c44c43c0fb98362e59661b7a1_1518220213_9971.png
일본 다도 풍경


1998년 5월8일 기념해야할 제1회 한국과 일본의 茶道(다도)에 있어서 문화교류가 한국 부산시 동구 범일동 소재 이지벨 16층 회의장에서 개최됐습니다.


본래 이 교류는 2개월 정도 전에 태양회 회원 야지마마사미님의 금년으로 11째를 맞이하는 한국원폭피폭자의 야유회에 대해 ‘피폭자 유가족인 사람들에게 茶(다)를 받쳐 드리고자합니다.’ 라는 간청에서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야지마여사의 봉사정신을 알게 된 야지마여사의 다도선생인신 쇼샌가의 아이하라 교수가 ‘나도 참가하고자합니다.’것으로 되었습니다.


아이하라 선생은 국제대학의 초빙을 받아 다도를 지도하고 있다고 하는데 말이 한층 더 비약해 국제대의 법학교수이신 사이도선생과 다도생도인 이개소애 가나애 씨와 니시다마끼 씨가 가세하기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한국과 일본의 다도, 한국에서는 다회라고 말하고 있어 그 중간이라 말할까? 연결역할은 태양회 이사장이신 다카하시 씨였습니다. 우선 부산의 태양회 회원 가운데서 이 교류 화를 추진하는 역원이 5명 정도 선발되었으나 그 5명도 다카하시 씨도 다도에 관해서는 거의 지식이 없습니다. 다도라는 오랜 문화와 권위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 틈새에 끼어져 쌍방의 문화의 차이 사고방식의 차이 체면을 존중하기 위한 조치 등으로 해 그 배려에는 약간의 파동이 있었습니다.


애당초 茶交歡會(다교환회)의 시작은 일본 측 이였으므로 그에 대한 원안도, 예산도 일본이지만 한국다회 분들이 모여서 실제 준비작업을 하게 되면 한국다회 분들의 힘에 100% 의지하지 않으면 어찌할 바도 없는 상황 이였습니다.


다카하 씨가 대만에 가 있는 동안에 여러 가지 실정에 부합시키기 위해만 부득기한 사정으로 연합회가 맡아주기로 된 것입니다.


이 교환의 주안점은 ‘차를 통해 한국과 일본인의 마음과 마음의 교류를 도모한다.’라는 목적에서 주최 같은 것은 누구이던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가 몇 차례 제기돼 금회는 순조로운 교류회가 되기는 상당한 애로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까지 생각하였으나 그러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타고 넘어 실현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맨 처음 경연 회의장으로 지목된 것은 부산일보사의 강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환회는 중간역할 자들의 실상파악으로 인해 그 나름대로는 점차 커져 버렸고 한국의 고전무용인 학춤까지 참가하기로 되니 그 실연을 위해 좀 큰 무대가 아니면 안 되므로 이지벨 16층의 문화화생사장이라는 곳으로 정해졌습니다.


부산일보사와의 계약금은 반환이 되지 않았습니다. 규모가 커지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변화에 따르는 즐거운 비명을 울리면서 전적으로 풋내기인 추진역원이 우왕좌왕 의논은 百出(백출)입니다.


그러나 이토록 애를 써 대성공리에 끝나고 보면 좋은 경험을 쌓도록 해주셨다고 감사의 念(염)으로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당일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해 한국도기의 요원인 道峰(도봉), 左峰(좌봉)을 견학하고 오후 3시까지 호텔에 돌아와 화복으로 갈아입고는 곧바로 회의장인 이지벨로 향합니다.

11ca596a9fdd196b6d593d98c7729796_1517613459_9119.jpg

처음에는 사전에 데운 물을 보온병에 넣어둔다 등의 말들이 있었으나 일본에서 무거운 철제 솥이나 炭(탄)까지 지참해왔습니다. 일본전통인 다도의 作法(작법)을 보이기 위해서는 숯불로 먼저 물을 끊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탄에 불을 지펴서 새빨갛게 태우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된 됩니다.


드디어 6시를 조금 지나 차에 취미를 두고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은 이러한 느낌인지 하고 생각되게 합니다. 소프트에서 조용한 구조의 사회에 따라 한일차의 문화교류회는 시작되었습니다. 차마 저고리를 입은 아름다운 부인이 조용히 壇(단) 올라가 獻香(헌향), 獻花(헌화)가 있었고, 이어서 獻茶(헌다)는 초등학생정도의 어린이가 한국식의례에 따라 행합니다.


이들 의식이 끝나고 부산디자인연합회장인 이찬수 씨의 인사말씀에 이어서 일본 측에서 다카하시 이사장의 인사말씀을 다음과 같이 한국말로 하였습니다.


『오늘은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제1회의 한국과 일본의 다도회가 열리는 것은 대단히 경축스럽습니다. 옛날 일본지역의 다도선생은 한국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본 다문화가 크게 발달돼 지난날의 다도의 선생인 나라에 생도인 일본사람들이 차를 대접하기 위해 와있습니다. 예부터 한국과 일본은 一衣帶水(일의대수)라 말하여져 지금 차라는 물을 통해 두 나라의 사람들이 사이좋게 맺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두 나라가 언제까지나 사이가 좋아질 것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일본서 오신 茶(차)선생들이 소개되었고 4명에게 꽃다발과 선물의 증정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아이하라 선생의 인사말 『자신이 좋아하는 차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교류의 一助(일조)가 된다면 이 이상의 즐거운 일은 없다. 부디 여러분께서도 일본에 와주셔서 금후 더 한층 따스한 교류를 심화시켜 나고자 합니다.』


인사가 끝난 후 일본다도의 연기피로로 되었습니다. 부글부글 잘 끓어오른 가마 앞에 아이하라 선생이 자리를 잡고 객으로서 야지마, 이개소애, 니시다의 3인이 화복차림으로 자리에 앉습니다. 드디어 소샌가의 작법, 그대로의 시가 시작됩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전개된 것인가?


모인 200명 정도의 사람들 숨소리는 잠시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 정적함 가운데 아이하라 선생의 발 움직임 손동작 정히 한 치의 틈도 없고나 말해야할까?


자연스런 몸동작의 아름다움, 그 정적한 가운데 허리띠에 끼어둔 복사(차 잔 같은 것을 청소하는 보자기)를 꺼내 두 손으로 “딱”하고 허공을 자릅니다. 그 일순간의 소리가 전후의 정적을 한층 더 깊게 해 나갑니다.


끝난 뒤의 질문에 답해 아이하라 선생이 말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조용한 산에 들어가 갑작스리 한 마리의 새가 소리 내 운다하여도 곧바로 새의 울음소리가 한층 더 산중의 조용함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고 말하였으나, 복사를 ”딱“하고 자르는 作法(작법)은 정히 적이 적을 불러 사람들은 눈을 깜박이지 않고 응시하고 있었으니, 그 가운데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참가자로부터 들었습니다.


이개소애, 니시다의 두 학생도 茶(다)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당당한 몸가짐, 때로는 주인인 아이하라 선생과 客(객)인 3인이 약간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띠우는 언저리에 千利體(천리체)라 말하는 다도의 정신인 和敬淸寂(화경청적)이 충분히 발휘된 일본 다도였다고 하고, 일본인도 한국인도 다 같이 크나큰 감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어서 한국 측입니다.
4인의 치마저고리로 몸을 단장한 부인이 등장합니다. 紫(자), 白(백) 담홍색 赤(적)의 치마, 綠(록)이나 황색 黃系(황계)의 저고리는 무엇이라 말할까? 優華(우화)라고 말하는 이외는 할말이 없습니다. 동양예의지국인 한국의 부인들 그 걷는 방식, 앉은 방식에 부드러움, 상냥함, 밝음 조용함이 그 복장과 서로 어우러져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우화함을 자아내는 것입니다.


한국 차의 전래는 632년 신라 선덕왕시대로, 그 200년 후인 흥덕왕 시대는 차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말하므로 한국은 차에 대해서는 일본의 아득히 먼 선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다도라 말하는데, 한국에서는 다회라 말합니다. 이것도 후일에 한국다회 사람에게 전해들은 말이지만 한국의 차는 양반들 사이에서 생긴 하나의 문화인 것이다고?


예를 들면 “차를 드세요”하고 권유한 뒤 그 귀부인들에게 자기딸아이를 시켜 차를 차려내게 합니다. 그 처녀가 내놓은 차나 과자 그 하나하나의 동작행위가 그 가정의 범절 등이 며느리 감으로서의 평가로 연결돼 가는 것입니다.  


8일 당일의 한국 차의 演技(연기)는  그러한 이조시대의 양반 생활상태를 풍기는 것 같은 시기였던 것입니다.
앞에 행한 일본다도의 秋霜(추상)을 생각나게 하는 것과 같은 엄함과 한국 차의 우화함과 따스함이 한국과 일본의 차 경연 그 작법 문화의 차이만은 있으나, 참가자는 크게 매료당한 것입니다. 


이어서 한국고전문예로써 가야금과 태고의 합주, 4인의 부인에 의한 학무, 맨 마지막이 3인조의 사물악회, 이것은 한국의 전통농악이며,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고전음악으로 되었습니다. 이 연주는 15분 정도 이어졌으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연도 중, 세 차례 네 차례의 박수가 들 끌었습니다.


한일 다문화교류회를 매듭짓는데 어울리는 음악예술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 이 회관 입구에 한일다문화교류라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회의장에서는 한국의 차와 일본 창의 시음이 행하여졌으며, 한국 차는 서서, 일본차는 작법 그대로 앉아서 라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으나 쌍방공히 대성황이었습니다.


한때는 이 한일다문화교류는 중지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할 정도의 문제도 야기되었습니다만 그러므로 인하여 대성공으로 끝난 금일 와서는 만족감으로 가득합니다.


생각하건데 1961년부터 시작한 한일국교조약은 13년 8개월을 소요한 뒤 1965년에 맺어졌습니다. 이 시간동안 久保田發言(구보다발언), 다까수기발언이라 말하는 역사에 남을 언동이 있었으며, 그때마다 크게 흔들리고 흔들렸던 것입니다. 이 국교정상화로부터 금년은 34년이 지났으나 얼마만큼이나 이 가장 가까운 나라의 사람과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맺어졌을 것일까요?


이 역시나 현실을 생각할 때 규모는 빈약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차를 愛好(애호)하는 자가 마음을 하나로 해 그 문화를 경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문제가 다소 생겨서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하물며 태양회의 役員(역원)은 차를 전혀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 뿐이였으므로 행사를 마치고나서 성공을 거두고 나서 잘도 한일 이라는 높은 벽을 타고 넘은 것이다고 말하는 것이 실감인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들만이 건배하고 있는 시대는 끝난 것입니다. 민간수준에서 서민과 서민이 사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은 한일정상화 20년째에 나가소배 수상이 서울을 찾았을 때 한국요인이 흘러낸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 서민 수준의 문화교류가 한일 사이에 조금씩 소리를 내면서 흐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5월 9일 부산다인연합회의 이회장은 교모하게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와 문화의 차이는 있다 해도 그것을 서로가 합쳐 이해하는 곳에 진정한 교류가 생긴다.”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서로가 나라와 나라, 문화와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이해하는 마음, 배우려 하는 자세, 그러한 일들이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금회 한일 차의 문화교류에 참가한 두 사람의 일본인 초등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드스케쥴(강행군)로서 일본에서 참가한 사람들은 “위가 움직이지 않는다.” “허리가 아프다” “감기로 하여 몸져 누워버렸다.” 등등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이 두 사람은 한결 같이 힘이 솟아난다. “한국은 어떠했느냐” 하고 물으니 “나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 만약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인이 되고 싶다” 하고 즐겁게 말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복 이런 심경으로 된 것인가 확실히 한국의 문화에 영향당한 것일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으로 돌아가 한국의 역사와 현실을 다시 바라봄과 함께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각자의 힘에 따라 확실하게 전진해 나가고자 생각합니다.

 

 


포토더보기▶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환영"(2)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by 관리자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환영"(2019.3.25.)

워커즈 코프 연합회 서울 태양회 방문&n…
by 관리자

기념행사의 이모저모(2018.8.6.)

행복한 순간의 미소​​​​​​​​​​​​…
by 관리자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식(2018.3.26.)

이사장님,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
by 관리자

[나눔행사] 쌀 기증(2018.2.6.)

[나눔행사] 쌀 기증(노원구 2018.2…
by 관리자

원폭평화전시관 2주년 기념행사(2017.8.6.)

원폭평화전시관 2주년 기념행사봉사단체 태…
by 관리자

(사)평화봉사단 해모음    대표자:고교목남 고유번호 : 778-82-00225 전화 : (02) 934-9828   팩스 : (02) 933-9828   이메일 : csh230@naver.com 주소 :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237다길 16(4층) 후원계좌 : 하나은행 290-910014-95105
Copyright © (사)평화봉사단 해모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