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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다)의 香(향) 한국과 일본(태양뉴스 4호(2)-2000년6월5일

관리자 2018-02-04 (일) 12:00 6년전 4702  

茶(다)의 香(향) 한국과 일본(2000년6월5일)
제2회 한·일 다(茶)문화 교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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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5월 26일 한국 인천시 소재 가천인력개발원에서 봉사활동 태양회로서는 제2회 한일 茶(다)의 향기 실연이 한국다문화협회와 공동주최로 열렸습니다.
일본에서는 오모테센케 다도사범이신 니와야마 가즈코 선생님을 선두로 연도우 야스코 선생님, 이자와 마사코 선생님, 아베 키쿠 선생님, 사카모토 마스요 선생님, 오기노 사치코 선생님 6분이 오셔서 출연하셨습니다.
庭山(니와야마) 선생들께서는 24일 來韓(내한)하셔서 25일은 陶器(도기)마을인 이천을 방문하셨습니다.


작년에 심수관 씨 來日(내일)한 400년 기념축제가 일본의 카고시마에서 한 달 동안 열렸습니다. 심수관이라는 도예가는 400년 전에 토요토미히데요시가 일으킨 왜란 때 일본에 끌려가서 九州(큐슈)에 계시던 시마쯔씨로부터 ‘어떤 것이든 만들라’고 명령받았을 때 한국의 흙(土), 한국의 窯(요/가마요)는 준비가 되었었지만, 火(불)만은 일본의 불로서 만들었다고 해서 ‘불 빌린 器(기)’라는 것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작년에 일본 카고시마에서 한국에서 배로 한국의 불을 운반한다고 하는 기념행사가 있었고, 이때 출품한 이천의 도예가 동곡 김정묵 씨의 도기 전시실에 가 보았습니다. 역시 일본 다도 선생님들은 눈이 높아서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질문 등을 하고 계셨습니다.


다음에는 도기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 보았을 때 같이 동행하던 한국의 안내자들은 ‘이것이 싸구나! 이것 주세요’하면서 기쁜 얼굴로 사고 있었지만 일본의 선생님들은 ‘먼저 멋진 작품을 보았기 때문에 ...’하는 표정으로 진열된 상품을 모두 구경하고 계셨습니다.


보통사람들은 왜 같은 도자기가 이렇게도 가격 차이가 나는가? 도자기의 미묘한 완성도를 측정할 수가 없는 거 같았습니다.


茶道(다도)도 또한 한 번 보면 미묘한 깊이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고 있으면 ‘아니! 이런 것인가?’라고 가볍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일본은 茶(다)와 佛敎(불교)가 합쳐져서 인간의 마음의 정적이나 부드러움, 상냥함 그리고 겸허함, 이러한 인간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차의 작법을 통하여 문화와 예술의 성에 도달시킵니다. 그래서 茶道(다도)라 합니다.


庭山(니와야마/정산)선생님께서는 茶道(다도)만 해도 50여년이란 경험을 가지신 분이라고 하는데 드디어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들이 26일 일본에서 한국의 인천에 장소를 바꾸어 차(茶)의 실연을 행하기로 된 것입니다.


경남 사천시에서 태양회의 회원들이 25일 밤에 서울로 오셔서 태양회 본부에서 투숙했고, 관계자들은 26일 아침 6시에 기상하여 庭山(니와야마) 선생님들과 인천의 회장아ㅔ 오전 10시에 도착하였습니다.


茶(다) 道具(도구) 속에 선생님께서 핑크 꽃 한 송이를 가지고 계십니다. 분명히 김포공항에 도착하셨을 때 태양회에서 한 분 한분에게 큼직한 꽃다발을 드렸었지만 도대체 이 꽃송이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하고 궁금했었는데 인천의 그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가지고 온 茶(다) 道具(도구)가 6~7박스나 되고 한 개 몇 십만 원 하는 抹茶(말차) 그릇 등이 태양회원 7~8명의 손에 의하여 차례차례로 묶여진 박스를 풀어내어보니 방 하나 가득했습니다.


그때 한 선생님께서 실연 장소인 가천인력개발원의 정원에 있는 잔디밭을 무엇인가 찾는 듯한 자세로 걸어가시더니 그 풀밭에서 4~5개의 풀잎을 따서 서울 호텔에서 가지고 온 꽃 한 송이와 같이 작은 꽃병에 멋지게 꽂아 놓으셨습니다. 4~5개의 풀잎과 한 송이 꽃이 어쩌면 가련하게 속삭이는 듯한 모양으로 天地自然(천지자연)의 理(리)를 나타내는 듯한 회의장으로 변해졌습니다.


‘아! 멋지다’ 그 꽃 한 송이 꽃는 방법하나에도 너무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다도 선생님이면서도 꽃꽂이 사범 선생님이라고 하십니다.


그 뒤에 알았습니다만 일본에서 오신 여섯 분 선생님 전원은 茶道(다도) 선생님이시고 그 중에 두 분은 華道(화도)의 선생님이시고, 詩吟(시긴/시음) 선생님도 부 분 계신다고 합니다.


어느 곳에서도 평소 잘 볼 수 있는 모습인데, 그 점이 茶道(다도) 선생님들이 비장하고 계시지만 표면에서는 나타내지 않는 다도의 사비(아무잡음 없이 고요한 상태)라고 일컫는 점이랄까요, 式(식)은 개회사로 시작되어 대한민국 국기배양을 한 뒤에 茶人(다인)과 태양회가 한국원폭피해자에게 오랜 동안 원조를 해왔다는 것을 듣고 한국 茶文化(다문화) 협회의 배려에 의하여 원폭피해자 사망자에게 묵념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한국 다문화협회 이귀례 회장의 인사말씀, 다음에는 태양회 다카하시 이사장님께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인사 말씀을 하셨습니다.


계속하여 庭山(니와야마) 선생님께서 단상에 올라 가셔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에 우리들이 힘이 되어 진다면 더 한 기쁨이 없습니다. 부디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본의 茶(다)의 作法(작법)에 들어갔습니다만 단상에 아름다운 민족의상(치마저고리)인 한복을 입으신 한국다문화협회 회장님 외에 한국다문화협회 분들 중심으로 茶(다)를 오모테센케 作禮(작례)에 의해서 내어놓으시면 그것을 한국 사람들이 마십니다.


일본의 다도와 한국의 다회와의 교류, 한일양국의 인간과 인간의 마음의 교류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에는 연푸른 민족의상(바지저고리)을 입은 청년이 등단하셔서 2개의 대금을 연주하셨습니다. 조용필의 한오백년을 부를 때 배경음악으로 나온 음색은 이 대금일까? 떠밀려오는 쓸쓸함, 정적함, 괴로움이 찡~ 하는 음색과 함께 그 장소를 압도시켰습니다.


제일 끝에 5명의 아름다운 한복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안주인과 손님, 따님으로 되어 한국 전통 다례를 실연하였습니다.


하나하나 상세하게 이귀례 회장님께서 그 동작, 움직임을 설명하고 계셨는데 규방다례라고 하시면서 한국의 귀부인들이 응접실 겸 쉬는 방으로써 그 안방에 손님을 대접한다는 예법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일본에서 오신 선생님들도 이 茶禮(다례)에 의해서 차의 환대를 받으시고 만족하신 모습으로 마시고 있었습니다. 남아 있던 태양회회원들이 이번에는 일본의 다도절차에 따라서 말차를 음미, 한일의 다의 향기는 終演(종연)을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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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규방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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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다례시연]

그 후에 오늘을 위하여 수고하신 분들과 일본의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태양회 주최로 저녁 만찬회를 열었습니다. 다카하시 이사장님께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니와야마 선생님의 건배 선창에 의하여 건배를 하였습니다.


만찬회가 거의 끝날 무렵 한국다문화협회 부회장께서 협회전체의 감사한 뜻인 답례로써 노래를 한 곡 피로하셨고, 그 노래는 이태리의 ‘오~소레미요’라는 노래였습니다. 1절은 한국어였습니다. 2절부터는 원어인 이태리어로 불렀습니다. 대 열창 속에서 감격의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태양회 대표로써 이사장님 부부가 일어서서 ‘등대지기’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합창했습니다. 이사장께서 한국어로 인사할 때는 잘 모르는 발음도 있었지만, 노래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동요이기 때문일까 발음도 이해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것으로 만찬회가 끝나는 가 했을 때 일본의 엔도 선생님과 아베 선생님 두 분께서 ‘그러시면 우리들도 시음을 하나 하겠습니다.’ 하시면서 후지산이라는 시를 읊었습니다.


한국의 판소리 풍조인 이 노래를 두 분이 소리를 맞춘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자 모르는 우리들도 절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멋진 가성은 앞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시음 선생님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더욱 자리는 흥겨워 갔습니다.


토요토미히데요시의 왜란을 반성하신 다음 정권자 토쿠가와이에야스의 노력에 의하여 607년부터 1811년까지 12번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건너온 것입니다. 총 세력 400명 전후, 오사카에서 현재 동경(토쿄)까지는 도보로 이동, 이분 통신사들은 동경에 도착되기 전전날에는 이즈오카를 지나고  시즈오카에는 일본의 제일 명산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3.776m의 후지산이 있습니다. 


조선 통신사가 남긴 문헌 속에 시즈오카의 山中湖(야마나카고)까지 오면, 그 거울 같은 호면에 새하얀 눈으로 덮인 후지산이 거꾸로 비춰지고 있어서 그 통신사들이 감탄했다고 하는 기록이 몇 군데 보입니다만 시음 선생님들은 그 광경을 노래 부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반도와 일본의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일본 사람이 조선 사람(그 당시의 명칭)에게 제일 두텁고 깊은 배려와 友好(우호)를 나타낸 역사는 이 조선통신사에 대한 것이 긴 역사를 통하여 최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조선 통신사는 지금부터 3~4백 년 전에 한국인과 일본인이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 인간과 인간관계로써 배려와 우호를 거듭한 것과 같이, 오늘의 한일 다문화교류가 한국 사람과 일본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다정하게 굳게 맺어졌다면 얼마나 훌륭하고 멋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유감스러운 것은 일본에서 일부러 한국에 오신 선생님들의 實演(실연)이 시간 관계상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은 조금 더 우리 측에서 배려를 해 드렸어야했다는 점이 아쉬웠는데, 그래도 일본의 선생님들은 만족한 기분으로 일본으로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태양회주최로 시작된 것이 2번째이기 때문에 관계자들의 대단한 노고에 비해서 좀 더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저렇게 했으면 더 성황을 이루었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완전한 것은 없는 것으로 더욱 더 20회 내지 200회 정도 한일다문화교류를 지향하며 분발해 나갑시다.


관계자 분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한국 원폭피해자 협회, 대전체육협회, 그리고 부산과 사천에서 오신 태야양회원님들은 시간관계상 실현 도중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만 그런 분들 다 같이 포함해서 관계자님들에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태양회- 이사장 다카하시 고준(高橋公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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