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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자(태양회뉴스 5호- 2000년8월5일)

관리자 2018-02-05 (월) 00:00 6년전 5079  

 인간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자
제1회 韓國(한국) 日本(일본) 모이자
가라오케 熱唱(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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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1일, 한국 사람과 일본사람의 공연으로 실시된 국제 노래자랑이 ‘모이자 가라오케 열창’이라는 명목으로 서울시 도봉구 초원뷔페웨딩홀에서 개최 되었습니다.


한국 태양회로서는 제1회이지만 이것을 10회, 100회로 계속하고 싶은 마음으로 후일을 위하여 상세하게 보고 드립니다.


저널리스트인 段(단) 씨의 소개로 일본 측 가라오케 책임자 中田(나카다)회장과 만난 것은 작년 12월이었다. 이 날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을 결정했지만 日時(일시)를 언제로 할까? 4월에는 내가 이사를 해야 하고, 5월은 한국·일본의 茶(다)의 문화교류가 있을 예정이고, 7.8월은 더울 것이니 가령 한일 노래자랑을 하자고 날짜를 정해 놓고 10개월 후라든가 아니면 1년 후라면 잊어버릴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조금 바쁘지만 6월 둘째 일요일로 정했다.


한국 태양회로서는 5월 26일 한일 다문화교류에 힘을 써야하고, 가라오케 관계는 그것을 끝내고 해야 하므로 나는 茶(다) 교류가 끝나고 곧장 대만에 출타하기 때문에 가라오케에 대한 준비기간이 짧은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6월 6일, 일본에서 팩스가 왔다. 그 팩스내용은 2명이 부를 곡명과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것을 보고 한국 태양회원은 깜짝 놀랐다. 곡명이 ‘영영’, ‘잊게 해주오’, ‘새타령’, ‘여고시절’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었던 것이다.


노래를 부를 사람도 ‘토노오까’, ‘코지마’라고 한글로 쓰여 있다. ‘아니! 이것은 나훈아 노래가 아니냐?’ ‘어머나! 새타령은 조금 어려운 민요인데, 이것을 일본사람이 부른다고, 우리들은 어떡하지?’


웅성거리면서 조금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한국 측도 가수와 곡명이 정해졌다. 7일 최후 역원회, 『여러분! 알겠습니까?’ 일본에서 오시는 분들은 노래 연습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잘 부르시겠지요. 그러나 여러분께서는 일부러 무리하게 잘 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래란 감정의 표현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제 나름대로 자기 개성을 살려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단, 일본에서 오신 분들은 비싼 교통비를 지불하면서 한국으로 노래를 부르러 오시는 것이므로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줄 것과 열심히 듣고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치면 됩니다. 이것이 예의겠지요.


가라오케라고 한다고 하여도 일본 측 사람들은 TV화면을 보고 부를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자기가 부를 노래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여 가지고 온다고 하니까 테이프를 사용할 수 있는 가라오케 기구, 설비, 마이크 음량, 에코 등 장치의 점검을 확실하게 해 주십시오』


이 점을 당일까지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정소를 빌려주는 측에서는 ‘기계는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로 장담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이번에 제일 큰 결점이었고 또한 반성할 점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6월 10일, 오전에 후꾸오카 공항에서 오신 후지무라 부부와 히루마 씨가 도착, 나카다 회장들은 6시 30분에 호텔에 도착하여 이들과 토노오카 씨, 코지마 씨와 합류해서 7시부터 한일 간 마지막 타진을 위한 만찬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후 도착 비행기가 1시간 이상이나 늦어져서 만찬회는 8시가지나 이루어졌고, 이 자리에서 한정식을 드시면서 일본과 한국 사람들을 소개하고 내일의 식순 등을 타진했던 것이다.


종료한 뒤 피곤하실 테니까 오늘은 그만 해산하려고 하니 내일을 위한 예행연습을 하고 싶다는 일본 측의 요청이 있었다. 그전에 행사 당일 4시경에 경연 장소에서 사전 연습을 하려고 했지만 장소 측에서 문제가 있어 그것도 할 수 없게 되어 하는 수 없이 한국 가라오케 연습장에서 리허설을 하기로 결정, 한글 네온가에 안내했다. 사실은 이것도 ‘일본 사람은 매우 비싸게 받을지 모르니까 제가 안내하겠습니다.’라는 호텔 측 관계자의 소개로 간 것이다.


호텔에서 준비해준 자동차로 가본 곳은 한국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도 일본 연가풍에는 맞지 않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시끄럽게 장내에 울려 퍼지고 있는 곳에서 일본 사람들은 노래를 부를 수가 없는 분위기여서 그곳에서 나와 두 번째 장소로 안내 받아서 연습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겨우 노래 부를 수 있을 때는 이미 시계가 밤11시를 지나고 있었다. ‘피곤하실 텐데’하는 걱정도 아랑곳없이 즐겁게 노래에만 열중하고 있다. ‘응~ 참 잘 부르는 사람들이구나. 10명 이상 있으면 꼭 2~3명은 서툰 사람이 있을 텐데...’ 그 서툰 노래를 참고 들어야 하는 일도 없이 이번에 오신 이 멤버들은 만약 노래자랑에 나가면 모두가 종이 세 번 이상 울릴 사람들뿐이었다. 


노래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실증이 나지 않고 점점 성황을 이루고 있어서 지금이 몇 시인가? 내일이 중요한 날인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노래에 열중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의 첫 밤은 끝난 것이다.


그 이튿날, 즉 경연 당일 오전 중에는 태양회원의 안내로 한국 역사를 새겨둔 비원 관광을 하였고, 한편에서는 3시가 지나서 겨우 일본 측 노래 반주가 들어 있는 카세트테이프가 태양회 사무실에 도착했다.


곡명을 당일 오전 중에 알았기 때문에 식순을 쓰는 자, 참석자들에게 배부할 팸플릿을 만드는 자, 일본 측 가수 한분 한분의 가슴에 달 싱싱한 꽃이 도착되어 그 준비 등, 또 한편에서는 사회자가 노래 부를 순번대로 카세트 반주에 첫 머리 맞추기에 몰두하고 있고, 겨우 2시간 전에 모두가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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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후 5시경에 모두 한꺼번에 태양회 사무실을 떠나 출연 장소로 향했다. 5시 30분경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웨딩홀에는 거의 만원이 되었다.


정성귀 씨의 사회로 최용복 태양회 부회장이 억양 높은 개회사에 의하여 대회는 개최되었다. 다음에 겨우 한국말을 더듬거리면서라도 할 수 있게 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과 일본어로서 인사를 드리고 ‘일본 사람들은 규모는 작지만 한국과 일ㅇ본을 연결시킬 수 있는 노래 친선 大使(대사), 노래 民間(민간) 外交官(외교관)이라고 하겠습니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피력했다.


계속해서 꽃다발 증정이었지만 노래 부를 때 꽃다발을 들고 부를 수는 없어서 미리 작은 꽃다발을 한복으로 정장한 부인부들께서 일본 사람 한분 한분의 가슴에 달아 드려서 멋지게 달려 있었던 것이다.


일본 측을 대표하여 나카다 회장께서 ‘오늘 이 자리에 참가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어제부터 태양회 여러분들의 따뜻한 환영, 환대를 받아 대단히 감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 한국 사람들의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 여러분의 웃는 얼굴을 일본에 선물로서 가지고 돌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감격의 인사말씀을 올렸다.


한국 측에서는 가수 중에 대표인 김대영 씨가 ‘오늘을 계기로 하여 한일 친선도모에 더욱 발전이 되어 주기를 빈다’는 인사 말씀 후에 마지막으로 이복선 태양회 회장께서 ‘조용히 열심히 들어주시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예의이니까 열심히 듣고 많은 박수를 부탁들입니다.’라고 오늘 주의 사항과 마음가짐을 말씀하셨다.


나는 음악 평론가도 아니기 때문에 논평은 할 수 없지만 제1번 선수인 토노오카 시, 처음부터 멋진 한국말로 노래 부른다. 한국 사람이라도 TV의 자막을 보고하는데 이분은 자막도 보지 않는다.


나도 다소 한국말로 부를 자신은 있지만 토노오카 씨에게는 경의를 표한다. 다른 분 말을 들어보면 연말에 한국 TV에서 외국인 한국말 노래자랑대회에 출연하여 입상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당당하게 부르는 모습, 센스, 한국 측 사람도 깜짝 놀라겠지만요?


한국사람 중에 제일 먼저 부른 선수는 이석 씨, 젊었을 때부터 음악에 다소 관계했다고 듣고 있었는데 지금은 정육점을 금년부터 개업했고 장사는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사가 잘 되는 것과 같이 노래도 잘 불렀다.


두 번째 선수는 우찌다키이찌로우 씨, 이 분도 대단한 용기로 혼이 빠질 정도이다. 곡명은 ‘밤의 플랫폼’ 일본의 유명한 가수 와타나베 하마코의 노래였던가? 갑자기 처음부터 이성(남자가 여성의 고음소리)으로 부른다. 이 분은 일본에서 제일 연장자로 보이지만 이성이라니 기가 막힐 정도이다.


내가 어렸을 때 스미타 가쯔히코 씨가 ‘요델송’이라고 하는 이성으로 노래 부르고 있었고, ‘마이나스 타-즈’에게도 이성의 프로가 있었지만, 우찌다 씨도 그에 못지않다.


두 번째 부른 곡은 ‘이별의 부르스’인데 이것은 분명히 유명한 가수 아와아노리코 씨가 부른 노래로 이것도 이성으로 한다. ‘상당히 멋진 이성이군요’ 하니까 겸손하게 ‘무엇인가 별다른 것을 부르면 주목될 거 같아서 했지요’ 꽤 상당한 실력...


아와야 노리코 가수가 살아 계셨다면 아오모리 말투로 ‘응 당신 가수 심정 잘 아는군, 시미즈 아키라 아오야 노리코 씨 노래 흉내 내시는 분 잘하는데!’라고 칭찬했을지도 모르겠지요.


한국 측의 두 번째 선수는 최명근 씨, 아름다운 여대생이 귀엽게 부른다. 일본 측 세 번째 선수는 히루마 쿄오코 씨, 한국 가수 이성애 씨의 힛트 곡인 이별을 한국말로, 또 ‘쯔가루의 꽃’을 열창했는데 손짓, 몸짓 속에서 여성의 부드러움과 청순함이 깃들여 있는 노래였다.


한국 측 세 번째 선수는 박성희 씨, ‘聖(성)’은 한국말로 ‘별’, ‘姬(희)’는 ‘희’발음이니까 이름이 ‘별희’인가 생각했는데 ‘성희’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星姬(성희/별나라 공주) 못지않게 歌姬(가희/가수)가 노래를 부르니까 사회자인 정귀섭 씨가 ‘왠일인지 땀이 흐른다’고 해 장내는 폭소가 터져 나왔는데 그 이유는 사회자는 별 공주님의 남편인 것이다.


성희 씨는 ‘동백아가씨’를 불렀다. 미야코 하루미 씨가 부른 안코 동백은 사랑의 꽃과 같은 노래인 것 같은데 이 노래는 한국의 이미자 씨의 노래, 그렇다고 하니 성희 씨 노래 소리는 가수 이미자 씨와 닮아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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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선수는 후지무라쇼우스케 씨와 부인 미사애 씨 부부로서 한 사람씩 부르는가 했더니 두 곡 모두 듀엣으로 했다. 금실 좋은 부부, 노래 잘 부르는 부부는 참 멋지다라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 부부가 노래 부를 때, 마이크 두개를 준비하면 좋겠다고 하므로 안심하라고 대답했지만 부끄럽게도 마이크 하나는 반주곡 테이프레코드에 사용되고 결국 두 사람이 마이크 하나로 사이좋은 부부와 같이 서로 주고받고 감싸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이크 두 개였다면 더욱 더 그 훌륭한 노래 소리가 멋지게 울려 펴졌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유감이었다.


두곡 째에는 가사를 보고 부르고 있었지만 이것은 일본 노래를 한국말로 고친 것으로 그 한국말 노래가 두 사람에게 너무 잘 어울려 모두가 부러운 눈빛으로 관청하고 있었다.


사실은 전날 밤 한국의 가라오케 연습장에서 두 분의 노래를 듣는 순간 마이크, 스피커, 에코 등의 관계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저렇게도 멋진 분위기를 만들까 하고 매우 감격했는데 경연 당일에는 마이크, 스피커가 좋지 않은 관계로 주최자 측에서는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다섯 번째 후부하시 쯔기코 씨는 ‘비 내리는 항구촌’과 '이륜초'를 불렀을 때는 왼손으로 V사인을 그리지만 그렇게 감정 표현을 크게 하지 않다가 제일 크라이막스에서는 멋지게 표현해 나가는 일본의 연가란 이런 것이다라는 감을 나타냈다고 본다.


인간은 슬픔이나 괴로움이나 쓰라림이란 감정의 극한을 눈물로써 나타내는 것인데 그 눈물마저도 참는 일본 여성의 강함, 이것이 여러 가지 연가로써 노래 부르게 되었다. 실로 일본 연가의 최고의 절정을 듣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본 측의 사또우 미노오 씨, 처음 이분의 올바른 이름을 잘 몰라서 ‘미노리오’ 씨 아니면 ‘넨유우’ 승려 이름 같은데 승려는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미노오’라고 했다.


밝고 쾌활한 사람 같은데 바다의 거친 파도와 부딪혀 나온 것 같은 남자다운 박력이 있었다. 말하자면 연가도 연가, 이분이 부르면 ‘진짜 연가’로 되고 만다.


노래도 ‘용신’과 ‘축제도 노래’인데 반주도 일본 독특한 사미센(세줄로 된 악기)이 나오고 가사 속에도 ‘原(시오바라) 단풍’이 나오는 곳에서는 일본 민요조로 부르고 있다.


내가 군마현에서 살고 있을 때 미야기현에 있는 생가에 돌아갈 때 ‘시오바라 온천방면’이라고 고속도로의 표지판을 몇 십번, 몇 백번 보아왔다. 그런 다음에는 시오바라 온천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선 아직 한 번도 시오바라 온천에는 가보지 못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꼭 그 온천물에 푹 잠겨서 사토 씨의 멋진 곡조인 축제 노래를 듣고 싶다. 


한국 측에서는 최재호 씨, 조균제 씨 등 젊은 선수들이 계속해서 박력 있게 몸으로 흥을 북돋아가며 박자를 맞추면서 하는 그 모습, 이것이 정식적인 가라오케 대회가 아니고 단순한 가라오케라면 한국 사람들은 노래를 들으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 들썩거리며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데, 그와 같이 들썩거리는 감정을 꾹 참고 조용히 들어야 할 노래가 계속 된 것이다. 두 분 다 같이 당당하게 재미나게 흥겹게 불렀다.


임호덕 씨는 지금은 주부, 3~4년 전에는 주부이면서 문방구를 했었다. 아름다운 치마저고리를 입고 TV드라마 사극의 주제가를 불러 성대한 박수 속에 본인도 ‘감사합니다’하며 머리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 뒤에 들은 말은 노래 부를 때는 떨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빙글거리며 불렀는데...


김대영 씨는 그 전에는 조용한 산촌에서 토끼를 사육했는데 이 집에 가면 귀여운 토끼가 몇 천 마리 있었고, 그 토끼를 구경하고 난 뒤 나온 고기가 토끼 고기였는데 귀여운 토끼 눈이 떠올라 좀처럼 먹지 못했던 추억이 있다. 노래는 그 아름다운 산촌과 같이 정적함이 쌓인 듯한 박력이 있었다.
한국 측의 제일 마지막 선수는 주선옥 씨, 지금은 꽃꽂이 계에서 회장을 하고 계시지만 그 전에는 가수를 지망하여 가수 자격증까지 가지고 계신다고 한다. 역시 가수 자격증을 가진 실력이어서 갚은 여운이 깃들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게 했다.


일본 측의 일곱 번째 선수인 이케모또 사요코 씨, ‘노래는 어떻습니까’와 미소라 히바리 씨가 부른 최종의 노래 ‘강물이 흐름과 같이’ 이 강물이 흐름과 같이라는 것이 일본 측으로서는 사실상을 제일 마지막으로 되었다. 왜냐하면 최종적으로 마지막을 장식한 코지마 케이코 씨는 한국말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강물이 흐름과 같이’라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 나는 12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전후 최대 가수라고 불러진 미시ㅗ라 히바리 씨가 돌아가신 것이 6월, 이때는 군마에 살고 있었는데, 미소라 히바리 씨의 추도공연을 TV에서 보았다. 일본의 가수들은 모두 모여서 그 종막에 ‘강물이 흐름과 같이’를 전원이 합창했다. 단상에서 부를 그 당시의 대 가수들과 거장들, 젊은 가수 등 거의 모두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작곡가 후나무라 토오루 씨는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인간이 아니고 다른 혹성에서 온 것 같은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존경하는 작사가 타카노 키미오 씨와 미소라 히바리 씨이다’고 한다.


일본의 작사, 작곡가, 가수들 대부분이 부러워하고 목표로 하며 듣고 반하고 마는 천재 가수 이소라 히바리 씨의 추도공연, 나는 최후의 감동이 되살아왔다.


미소라 히바리 씨와 같이 유창하게 부르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케모또 사요코 씨가 부른 노래가 인간의 솔직함과 꾸밈없는 인간 직성을 느끼게 하여 감동적이었다.


미소라 히바리 씨는 언제나 제일 마지막에 부르고 있는 것과 같이 이번에도 일본 노래 마지막은 이케모도 사요코 씨라고 충분히 느껴진다.


왜냐하면 일본 측의 제일 마지막은 코지마 케이코 씨였지만 코니마 케이코 씨는 치마저고리를 바꿔 입고 단상에 올랐다. 곡명은 ‘새타령’이라는 한국 민요로 ‘새’의 이야기로써 제일 큰 새는 봉황새이고 산에 가면 여러 가지 새들이 울고 있다고 하는 가사 도중에 ‘뻐꾹뻐꾹 꾀꼴꾀꼴’이라는 우는 소리까지 들어 있다.


일본사람 도중에서도 한국 노래가 꽤 많이 불러지고 있지만 새타령 정도 되면 한국 사람도 그 특별한 구절이 어려워서 좀처럼 잘 부르지 못한다.


‘새가 날아든다’라는 노래가 시작되자 곧장 치마저고리를 입은 한국 부인들이 3사람, 5사람 앞에 나와서 춤추기 시작하여 드디어 코지마 케이코 씨 앞에까지 10명 정도 나가서 춤추는 원이 생겼다.   


일본사람이 한국의 민족의상을 입고 한국 노래를 부르고 또 그것에 맞춰서 한국사람이 춤을 춘다. 일본사람과 한국 사람과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키고 싶다는 조그마한 성의가 여기까지 달성하게 되었다고 자부해도 되겠지요.


이 노래 순서에 관해서는 일본 측에서 정해달라고 부탁해도 일본 측에서는 가수 명을 보낼테니 한국 측에서 마음대로 정해달라고 한다. 내 마음대로 정해버린 것인데 순서도 좋았고 한일 양국 사람들이 하나로 되어진 “제1회 모이자 가라오케‘는 열창 속에서 종료했다고 볼 수 있다. 


최후로 한국의 락 그룹인 ‘시나위’리더인 신대철 씨가 ‘일본 사람들의 노래도 한국 사람들의 노래도 너무나 잘 불렀기 때문에 전원이 최우수입니다’라는 심사평에 이어서 신대철 씨로부터 일본 출연자들 한 사람 한사람에게 기념품이 증정되고, 나는 나카다 회장과 단 씨에게 위로 기념품을 증정했다.


나카다 회장으로부터는 한국인 가수에게 미소라 히바리 씨 사인이 들어 있는 부채를 기념품으로 한분 한분에게 증정했던 것이다.


기념촬영 후에 뷔페식 요리를 먹으면서 제2부 가라오케가 자유출연 식으로 시작되었는데 처음에 나온 사람 5~6세의 여자아이들이 아름다운 치마저고리를 입고 노래 부르고 있다. 그로부터 다소 앙코르도 나오는 등 모이자 가라오케는 대단히 성황을 이루었다.


모든 것이 끝날 무렵, 종연 5분 전에 많은 분들이 단상 앞에 나와서 춤추자는 사회자의 일성에 의하여 템포가 빠른 곡이 흘러나오고 전원이 앞에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일본 사람들은 처음 겪는 경험이어서 처음에는 조금 쑥스러웠지만 한국 사람이 너무나도 흥겹게 춤을 추고 있기 대문에 덩달아서 부끄럼쟁이 일본사람도 춤추는 무리 속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곳에는 한국 사람도 일본사람도 아니고 자아를 잃어버리고 손발을 움직이는 춤의 원으로 되어 하나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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