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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으로서 한일 역사의 상위를 호소함(태양회뉴스 8호)

관리자 2018-02-11 (일) 08:12 6년전 4510  

일본인으로서 한일 역사의 상위를 호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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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회 이사장 다카하시 고준

 

『처음으로』
나는 지금 한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금년(2001년)은 7월 말경부터 일본의 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강하게 된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 측 일본의 교과서에 대하여 35개소의 수정을 요청하였습니다만 개정한 곳은 불과 3개소라고 하는 일본 측의 대응이었습니다. 8월에 들어와서는 한국의 매스컴은 연일 반일의 보도가 나왔습니다.


일본이 36년간 식민지로 지배했을 당시 생생한 고문사진과 대량살상의 옛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일본인으로서는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비참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인 20명이 차례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일본에 항의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마 일본에서도 생생하게 그 영상이 보도되었겠지요.


나는 이 일련의 반일의 보도를 보고는 눈을 감고 몇 번이나 우려하였습니다. 나 자신은 오랫동안 한국을 생각해 왔고, 지금 한국에 와서 거주하는 이유는 비력, 무력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우호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염원에서입니다. 그것이 지금 한일의 양국이 최악의 상태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작년 한일의 문화 및 스포츠 교류에는 한국의 문화관광부에서 100%이상 출석하였지만 금년에는 한일의 문화교류가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나도 6월에는 한일 다문화교류를 열고 성공, 성황으로 마쳤습니다만 9월 16일에 부산 관광호텔에서 예정하고 있던 한일 가라오케 대회는 연기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년 가라오케 대회는 조금 미비한 점이 있었기에 올해는 금년 봄부터 내 자신이 부산에 몇 번이나 왕래하면서 가라오케 장소로 될 호텔에 머물면서 근처의 레스토랑, 가라오케 연습장까지 가서 예약을 하고는 안내장도 쓰고 기념품까지 사기도 했는데 그만 연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노력은 헛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유감입니다. 이 가라오케 연기 등을 설명할 겸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만 한국이 이렇게도 반일에 불타고 있는데도 일본은 어떠합니까?


일부의 사람은 한일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만 특히 일보 지방으로 가보면 이런 역사문제와는 상관없이 따듯한 봄날 같이 이곳도 저곳도 평화스럽고, 철도원도 택시의 운전수, 점원 등 그 누구도 다 따듯한 마음으로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상대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어서 아! 일본은 평화스럽구나! 그런데 나 자신도 이곳에 있으면 평화에 젖어버릴 것은 틀림없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9월이 되었지만 한국에는 아직까지도 반일 운동 보도는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6~70년 전, 중국인과 한국인으로부터 귀신같이 겁을 내고 있었던 일본, 지금도 그 원념이 남아 들끓고 있는데도 일본은 이미 과거의 역사와 과거의 잘못은 없었던 것 같아 평화에 익숙해졌고, 나쁘게 말하면 평화치매로 된 일본, 이 양국의 상위를 보면 역시 이 한 문장을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엘리트와의 대화』
우선 일본에 가서 깜짝 놀란 것은 매스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한국은 도대체 왜 그렇게 노하고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이 내정간섭이라고 할 정도로 압력을 가하고 수정을 요구하며 노하고 있는 것은 알겠지만 일본에서도 그런 교과서를 사용하는 곳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은 적은 사람이니까 좋지 않습니까? 하는 논리입니다.


또 고교,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국가공무원과의 대화 중에서
「강화도 사건은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한일합병을 아십니까?」
「있었던 것은 압니다.」
「연대는?」
「?」
「일본의 초대 총독은?」
「?」
「3․1만세 사건은?」
「저-, 그것은 우리들의 연대에 물어도 잘 모릅니다. 학교에서는 좋은 성적이 되라고 가르치며, 우리들도 시험에는 나름대로 공부는 하였지만, 시험에 이것이 나온다. 이것은 안 나온다 하고는 『표시』를 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우선 우리들의 느낌으로서 한일문제 등은 절대로 안 나온다 그런 생각으로 있었기에 암기하려고도 하지 않고 암기도 안했습니다. 대체로 교과서에는 없었으며 선생님도 상세히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았기에 한일의 문제는 알 리가 없지요.」


나는 이 말을 듣고는 과연 이 한마디로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은 나도 그러했습니다. 일본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한일의 역사를 상세히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이 왜 노하고 있는지, 그 본질의 이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30년 전 가까이부터 한국에 흥미를 가져 한국에 관한 책도 사고 아무리 큰 책방에도 나만큼 한국에 관한 책을 갖추어 놓은 곳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책을 샀습니다. 그 책이나 tv에서 한국의 교육 상태를 보았습니다.


1910년 한일합병, 이것은 합병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망국인 것입니다. 이 망국에 의하여 얼마만큼의 한국인이 가족과 떨어지고, 억울하게 죽고, 부당한 압박을 받고, 슬픔, 괴로움, 고통의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다시는 이 망국의 비애를 맛봐서는 안 된다고 학교의 선생님은 열변을 토하며, 학생들은 눈물을 짓고 듣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 입장에서는 중국침략이나 한국의 식민지 지배의 진실을 교과서에 올려서 상세히 지도한다면 일본의 아이들은 선조가 이렇게도 나빴을까? 하고는 어른들에게 불신이 생기고 일본인으로서의 긍지도 없어지겠지요. 그래서 일본의 교과서는 한일의 역사를 비단같이 그 사실을 한없이 숨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은 망국의 슬픔을 다시 맛보지 않으려고 철저히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가르치려고 합니다. 이 양국의 방침, 거기에서 생기는 교과서, 그리고 한일 역사의 상위점등을 협소하게 한다던가, 합치한다는 것은 아마 절망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만약 상호간에 이해하려고 한다면 지배한 일본 측이 지배당한자의 고뇌한 입장에 서서 한일의 역사를 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좋은 말인지 모르지만 예를 들어 사쯔마야끼의 도예가 40대의 심수관씨가 있습니다. 심씨는 이데요시가 조선 출병시, 구주의 시마즈에 데리고 왔습니다. 이 심씨가 처음 한국에 여행하여 어느 대학에서 강연했을 때, 학생은 한국인으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심씨에게 이것저것 반일감정을 부딪혔습니다.


심 씨는 이 학생들 앞에서 「너희들이 일제 36년의 지배를 그토록 말한다면 나는 370년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러분 너무나도 지나간 일을 지나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심 가는 초대 심수관씨가 시마즈 세력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와서 이미 370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나도 370년의 과거를 되돌아 볼 생각은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너무 집착하면 진실한 인간의 진보는 없는 것이 아닐까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심수관씨의 「여러분들은 지나간 일을 너무 지나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한말, 만약 한일의 양국이 21세기의 미래를 바라보고 좋은 파트너로서 상호협력을 할 수 있다면 거기에 양국의 접점도 확립된다고 생각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인으로서의 응석입니다.


역시 한국으로서는 과거의 역사에 대하여 명확한 태도, 성실한 자세를 구하려고 하겠지요. 일본인으로서도 이 일선을 넘지 않는 한 매년 8월이 닥칠 때마다 뜨거운 한국의 반일감정을 저지할 수는 없을 것이겠지요.

『야스쿠니와 오십유여년』
일본은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야스쿠니신사에 모십니다. 일본을 위해 죽은 수백만의 영령에 대하여 전후의 총리대신, 요시다, 기시, 이케다, 사토-, 다나카 등이 당당히 참배하였는데도 아무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야스쿠니 참배가 처음으로 문제화 된 것은 전화 30년만의 8월 15일에 참배한 미기수상부터 입니다.
실은 일본이 경제 부흥하여 근린제국에 원조를 할 여유가 생기지 시작한 1960년대, 한국인의 유식자 김달수, 하다다카시, 강재언, 이진희 등이 일본의 교과서에 의문을 던져 「이 만큼의 여유가 생긴 일본은 물질면의 원조만으로 침략전쟁이나 식민지 지배를 흐지부지하게 끝마치지 말고 정확하게 정신면에서 사죄를 해야 되지 않느냐?」고 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40년 동안, 이 유식자나 양식자의 언론이나 주장을 무시해 온 것입니다. 토인비가 말하기를 「역사는 왜 배우느냐? 그것은 역사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이런 원칙론에 선다면 우리 일본인은 더욱더 겸허한 자세로 한일합병의 전후에 얽힌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시바료타로-씨가 「한일합병이라고 하는 우책을 하고만 일본은 한국인에게 천년의 원한을 가지게 하였다」라고 술하고 있습니다.


지난날에 중국의 북경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담화를 읽었습니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몇 십의 난관을 돌파하여 10여명의 일본어과에 합격한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들은 이번 일본의 교과서 문제로 10명의 학생이 일본어를 배우는 것을 거부한 모양입니다.


중국인으로서는 일중문제는 중국내의 역사 만으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침략해 온 일본이라는 나라와 관계없이는 일중문제를 생각할 수 없다는 주지에 눈을 감고 생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40년 전부터 한국의 양심 자가 호소를 계속해 온 언론에 귀를 기울이고 겸허한 자세로 반성하여 지성을 다하였다면 전후 56년이 지난 현재 일본인의 수치를 세계에 폭로하는 일은 없었겠지요.

『‘불교자’의 전쟁책임론』
「오늘 한국인의 마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정씨는 「일본이 전쟁에 패해 한국을 떠날 때, 우리들은 36년간 구박을 받는 자로서 일본인에게 돌을 던지든지 죽이든지 그것은 자유자재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본도 또 전쟁에 패한 불쌍한 국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한국을 떠나는 일본인이 한사람도 36년간을 미안하다던가, 독립을 축하한다던가 말하는 자는 없었다. 그 후 일본이 부흥하여 경제대국으로 되어 있는 현재에 있어서도 지난날의 군인, 정치가, 교육자, 종교가까지 일본인이 한사람도 왜 사과 하지 않는 것일까?」


이 글을 읽고는 가슴이 뜨끔하였습니다.
나는 그때 한 수업 중의 소화 소승이었습니다.
장래 종교가로 될 재능은 없지만 불교 신앙자로서 즉 신자나 인간에게「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겸허하게 반성하는 마음을 가려자. 나쁜 짓을 하면  참회하여라고」고 설하는 자는 자기는 무릎을 꿇고 사죄하여도 아직 모자란다. 한국을 식민지로 한 일본인의 한사람으로서 한일합병과 그 후의 죄를 어떻게 하느냐, 어떠한 형식으로 사죄하느냐, 서로 마주 대하고 가느냐, 나에게는 생애에 걸쳐서 풀어지지 않는 괴로움으로 되었습니다.
이치가와씨가 쓴 불교자의 전잭책임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학자로서의 논이었고, 인간으로서, 종교가로서의 사죄의 지성은 없었습니다.
내가 아는 한계에서는 일본 불교청년동맹의 세노기로이 전후 중국인에 대하여「한 종교인으로서 전쟁을 저지할 수 없어 대단한 희생을 주고 말았다.」라는 것을 술하여 깊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당)종문의 여러 선철 선배들에게 종교가로서 전쟁의 책임에 대하여 반성이라던가 참회하는 말이나 언론을 들을 일이 없습니다. 바꿀 수 없는 청춘을 나라를 위해서 라는 가르침에 생명을 걸고 투쟁한 전쟁이 침략 전쟁이었다는 것을 그 당시 군인이었던 사람들은 인정하기 어렵겠지요.


국가의 지도자들이 36년의 식민지 지배가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되돌릴 수 없는 우책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아름다움을 설하는 불교 신봉자가 우책을 우책이라고 하며, 진지한 반성과 참회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말할 것입니까?


옛날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지금 일본은 이유 없는 살인, 이유 없는 무차별 살인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중고생들이 선생님에 대한 반항, 학교의 황폐함은 손을 쓸 수가 없이, ‘이래서는 중학교의 교육은 의미가 없다. 의무교육은 폐지하라’고 하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청소년들이 정신의 황폐는 전쟁을 경험한 일본의 어른들이 전쟁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없었다는 것에 한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한일합병이라는 것은 (린국:이웃나라의)의 인간으로서는 우행이었다. 나쁜 것이었다고 겸허하게 반성하는 마음 없이는 어떻게 학생들에게 반성하는 마음, 겸허하게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인간으로 키울 수 있겠습니까? 반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드디어 일본을 쇠퇴하게 만들 것이겠지요.
 
『끝으로』
니토베-이나조가 쓴 「무사도」라는 책을 출판하였을 때, 세계의 각국은 빠짐없이 이 글을 자국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때는 아직 일본인의 정신적으로 기품, 아름다운, 겸손함이 있어서 그것이 인간의 모범으로서 절찬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후의 경제 부흥으로 일본인은 부를 얻게 된 대신에 소중한 인간으로서의 마음을 잃었다고 할 만큼 일본은 세계 최정을 자랑할 원조국인데도 그 만큼 호평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소중한 마음이라는 것을 어딘지 잊어버렸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일본인은 우수한 민족입니다.
예를 들면 국민의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를 넘은 것은 일본은 1984년, 한국은 1996년이니까 12년 차이가 있습니다.


토쿄 올림픽은 일본이 1964년, 한국 올림픽은 1988년이니 24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신간센은 일본은 1960년, 한국은 아직 계획 중으로 실시를 못하고 있으니 약 4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에 비할 뿐만 아니고, 세계의 각국에 비해서도 단연코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일본인의 우수한 두뇌에 덧붙여 언제 일본에 돌아가 보아도 인간으로서 친절함, 마음가짐, 예의바름 등은 내가 매월 가고 있는 대만이나 한국의 사람들과는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이러한 훌륭한 인간성을 갖추고 있는 일본인이 왜 한국, 중국에서 비난을 계속 받고 있는 것일까요?  것은 유일하게 과거의 역사의 잘못에 대한 지정심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모두에서 술 한 바와 같이 나는 지금 한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항상「사과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태양회」라고 하는 작은 봉사단체가 한국에서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국사회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겸허한 사과하는 마음가짐이 조금은 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태양회의 회원들에게 호소하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겸허한 마음가짐을 가져 주십시오. 식민지로 나라를 빼앗기고 학대받고 고생하던 사람들 측에 서서 한일의 역사를 생각하고, 그곳에서 진실한 우호의 징검다리를 만들어 가고 싶은 생각입니다.


일본인의 한사람으로서 강하게 이것을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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