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원 여사 위령식전(태양회뉴스 10호) > 해모음뉴스

본문 바로가기

회원메뉴

쇼핑몰 배너

박경원 여사 위령식전(태양회뉴스 10호)

관리자 2018-02-11 (일) 14:45 6년전 4761  

 

박경원 여사 위령식전

48482e971adcdf7549f9fdcd82ca01c9_1518327557_4158.png

누군가 써놓은 박경원여사 사고 지점


48482e971adcdf7549f9fdcd82ca01c9_1518327350_4833.jpg

이사장 박경원 추도문 낭독


48482e971adcdf7549f9fdcd82ca01c9_1518327360_3973.jpg

박경원 기념비 제막 광경


48482e971adcdf7549f9fdcd82ca01c9_1518327365_9774.jpg
신명여고 동창회장 추도문 낭독 

우리들 태양회는 시(市)가 준비해 준 마이크로 버스와 봉고차와 승용차를타고 박경원씨 조난입구로 향했다.
약 20분 정도로 도착. 고마운 일은 아타미시에서 지정된 장소 부근의 잡초를 깨끗이 정리해 놓았다. 박경원 여사가 실제로 조난사한 장소는 이곳에서 약 1시간정도 걸어 올라가야만 하는데 성하에서 잡초가 무성하여 현장까지 갈 수가 없다.


그 때문에 그 입구에서 위령식전을 행하게 되었는데 누군가가 세워두었겠지요. 폭 40m 높이 3m 정도의 검은 간판에 하얀 글자로 ‘구로다케 박경원 비 입구’의 간판이 서 있다. 시에서 그곳에 책상과 하얀 천을 준비해서 주었다.


사회는 서울 대학생인 정기현군이다.
“지금부터 한국 태양회 주최에 의한 한국 여성 첫 비행사 박경원 여사의 위령식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태양회를 대표하여 부회장 명정강씨,
「한국 태양회를 대표하여 한마디 인사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우리들은 작은 신문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사장님께서 이 지면을 통하여 지금 이 산중에 잠들어 계시는 박경원 여사에 대하여 발표하신 것이 2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저도 한국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에 이렇게도 훌륭하고 용기 넘치는 여성이 계셨는가 새삼 놀람과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남성 사회이므로 역사에 남는 여성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한국의 잔다르크"로 찬양되어지고 있는 유관순, 또 대학자이신 이율곡 선생님을 낳아 교육시킨 신사임당 등이 있습니다만 한국 항공계의 선구자 박경원 여사는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한국 여성의 한 사람으로 길이길이 역사 속에서 화제의 인물로 살아갈 것이라고 사료 됩니다.


박경원 여사의 짧은 인생, 그 짧았던 인생 속에서 남겨둔 구적을 되새겨 볼 때, 우리들이 당신이 조난당한 이곳에 이제야 겨우 오게 된 것이 너무나 늦은 감이 들어 죄송한 마음 금치 못하겠습니다.
박경원 여사님! 부디 이점을 잘 용서해 주시고 영원히 편안하게 잠드시길 빕니다.


일본 여성 비행계에 내어도 결코 부끄럽지 않은 우리 한국 여성 비행 제일인자 박경원 여사님!
우리들은 당신이 남겨준 민족의 긍지를 열심히 닦아나갈 것이며 우리들도 당신이 남겨준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슴 속 깊이 새겨두어 힘차게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

계속하여 신명여학교 동창회 총합 회장 최종덕씨가 박경원여사 추도문을 낭독했다. 그 추도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박경원 선배님!
선배님의 모교 신명여학교의 5만 명 동창생을 대표하여 자랑스러운 선배님의 영전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신명의 자랑인 박경원 선배님!
70년 전 그 당시 우리 여성의 꿈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었는데,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하늘을 날고 싶다"는 엄청난 큰 꿈을 꾸셨습니까? 남성들조차 감히 도전하기 힘든 비행기 조종사가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이국 땅 일본에 건너가서 경제적인 어려움과 힘든 훈련과 정을 이겨내시고 여성 최조의 2등 비행사 자격을 취득하셨으니 참으로 존경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모국과 모교를 그리워하시던 선배님!
긴 세월의 외로운 타향살이 속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태어난 고향과 모교, 그리고 조국에 대한 본능적인 향수를 승화시키기 위해 모국 방문의 장도에 올랐으나 대장정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이곳 아타미시의 산정에서 33세의 젊은 나이로 일생을 마쳤으니 이 애석함과 비통함을 무슨 말로 표현하며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감동을 우리에게 남기신 선배님!
조난당하신 최후의 순간까지 사랑하던 비행기 "청연호"의 핸들을 꼭 잡고 계셨다니 비행에 대한 애착과 집념, 그리고 투철한 사명감과 불굴의 투지는 참으로 감동적이며 애절함이 마을을 더 아프게 합니다. 선배님은 비록 짧은 일생을 사시고 가셨지만 그 숭고한 정신과 위대한 업적은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선배님은 한국 여성의 긍지와 우리 미족의 자부심을 더 높인 선구자이시며 한일 우호 증진에 기여한 개척자로서 70년의 긴 세월이 흘러간 오늘 이 순간까지도 우리 모두의 가슴에 뜨거운 사랑과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박경원 선배님!
이제 우리 신명 5만 동문들의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곳 일본 속의 한국 정원 안에 있는 선배님의 기념비 옆에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를 헌화하고 교가와 선구자의 노래를 현창하며 신명의 자랑이요, 대한민국의 자랑이신 선배님의 영령을 추도하고 영원히 추모합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안식하시며 많은 복락을 길이길이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시 뵈올 때까지 편히 쉬십시오.


신명의 자랑, 대구의 자랑, 대한민국의 자랑이신 박경원 선배님!
사랑합니다. 영원히 존경합니다. 안녕히」

어느 쪽도 한국말이지만 특히 신명여학교는 개교 이래 100년 가까운 세월 중에서 5만 명 졸업생이 있다는 일, 그 5만 명을 대표하여 우리 모교의 위인 박경원 선배에게 바치는 이 절절한 추도문이 낭독된 뒤 대구시장으로부터의 메시지도 낭독했다.


계속하여 태양회가 박경원 여사의 영령에게 바친다고 하여 「고향의 봄」과 「타향살이」를 노래 불렀다. 고향의 봄은 일본의 「유야케 고야케」에 필적하는 동요의 명곡이고, 타향살이라는 것은 이향 만리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쓰라림, 처절함, 쓸쓸함 노래에 담은 것이다. 사람들은 「이국의 언덕」이라는 노래를 알고 있을까?


오늘도 저물어가는 이국의 언덕에
친구여! 쓰라리고 안타깝겠지요.
참아야한다. 기다리고 있어라
태풍이 지나가면
돌아갈 아침, 아침도 온다.

시베리아에 억류당한 일본병 60만명이 영하 30~40℃ 속에서 작업하고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자, 동사하는 자가 속출했다. 그 때 이국의 언덕의 노래가 만들어져 그들에게 불러졌다고 한다.


일제 36년의 지배 당시 제일 많을 때는 4백만 명의 조선인이 일본에 있었다. 논밭을 빼앗기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자, 강제연행 당하여 일본에 간 자, 이국 일본에서 살며 거의 나올 수도 없는 암흑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혼자서 살아간 박겨원씨도 이향만리에서 사는 쓸쓸함, 괴로움을 맛보았을 것이겠지요. 이국의 언덕과 같은 뜻을 가진 이 노래가 시작되자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에 일본인 코지마 케이코씨가 새의 노래 「새타령」을 불렀다. 지금부터 70년 전 여성은 아직 자동차의 면허증도 가지지 못한 시대에 여성이 비행기의 조종면허를 가진 일은 그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겠지요. 때문에 박경원 여사가 33살의 젊음으로 조난사할 때 매스컴은 「인간 새, 박경원」이라고 칭송했다. 일본인이 처음 세운 박경원 여사의 위령비도 「鳥人(인간 새)」의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박경원 여사는 고향에 계시는 그리운 형제와 친구 옆에 새로 되어 날아가고 싶어서 비행기 면허에 도전했지 않았을까, 새타령은 매우 어려운 한국 민요인데 코지마씨는 그러한 생각을 담아 높은 음정으로 힘차게 이 노래를 불렀다.


다음은 「살토」, 그 시 한국 풍습은 거의 다 매장이었다. 그러나 박겨원 여사는 일본에서 죽었기 때문에 화장하고 말았다. 원래 박경원 여사는 고향땅 밑에서 잠들 것이 아니었던가. 그 고향의 흙냄새를 맡도록 하고 싶은 뜻인지 박경원 여사의 자손 진학호씨는 박씨 집안 묘소 부근에서 한줌의 흙을 가지고 왔다. 그 흙은 조난 입구에 산호하여 마음을 위로 한 것이다.


다음에 사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여사의 조난사는 8월 7일 11시 25분경이라고 합니다. 그 시간에 25분정도 늦어졌지만 지금부터 박여사를 추모하며 1분간 묵념을 하겠습니다.」「묵념」


다음에 헌향, 진학호씨, 신명여학교 졸업생 등 6명, 계속하여 헌화는 전원이 했다. 이 헌화는 전술한 바와 같이 어제 숙박한 이토가든 호텔 앞 주차장 한 곳에서 피어 있었던 것이다. 그 운전기사가 물에 담가두었기에 싱싱한 그대로이다. 이 한국 국화 무궁화를 사람들은 한 개씩 올리고 합장하며 명복을 빌었다.


다음에 박경원 여사 모교 신명여학교 교가 제창, 4명의 후배는 「선배님 들어주십시오. 겨우 우리들 우리 모교의 대 선배가 잠들고 있는 산 중 입구까지 왔습니다.」하듯 전방 산을 보면서 힘차게 부르는 소리가 산을 울리게 한다. 이 때 이 위령단 앞에 어딘지 모르게 큰 나비가 한 마리 춤추며 내려왔다. 조금 있으니 또 한 마리, 두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가 나풀나풀 위아래로 때로는 높게 때로는 낮게 날고 있다. 우연이겠지만 신명여학교 후배가 열심히 노래 부르고 있는 그 앞에서 나비는 날고 있다. 마치 노래에 장단 맞추듯이,

「보아라 우뚝 솟은 팔공산 우리의 맑은 정신,
저 같이 어둠을 깨뜨리는 학문의 횃불,
온 누리 비추이는 여기 신명은,
이 나라 여성의 힘,
신명은 이 겨레의 자랑」
(신명여학교 교가의 일절)

이어서 또 한곡의 노래가 피로 되었다. 「선구자」이다. 한국에서는 영웅을 칭송할 때 부르는 노래이다.


이 엄숙함을 느끼게 하는 노래가 끝날즈음 두 마리의 나비도 사라져갔다. 마지막 태양회 이사장의 시사 「한마디 인사말씀 올리겠습니다.


오늘은 봉사활동 태양회가 한국 여성비행사 박경원 여사의 추모식을 봉수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무엇보다도 원로를 무릅쓰고 다망한 중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구시에 박여사의 손자되시는 진학호씨, 박여사의 모교 신명여학교 졸업생 대표 여러분, 태양회원 여러분, 여기 아타미에 있는 박여사 조난 입구까지 왕림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께서는 박여사의 고향의 흙을 뿌리고 헌향과 헌화와 추모의 노래를 불러 주셨습니다.
박경원 여사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한국 여성 비행사가 이 부근에서 조난사 당한지 올해가 꼭 69년째로 됩니다.


박여사의 조난사는 8월7일이고, 여름에 이 산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겠지만 매년 1월에 이 산 속에 들어가 박여사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는 조난 현장까지 가서 위령비를 청소하고 향을 피우고 꽃을 꽂고 있는 일본 사람 유지가 계시다고 합니다만 진실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한국 사람은 너무 멀어서 좀처럼 올 수 없지만 이 조난 입구까지 와서 향을 피우고 꽃을 헌화하며 박여사의 추도를 위하여 한국 노래와 모교의 교가까지 부른 것은 아마 사후 69년 동안에 처음일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박경원 여사께서도 꼭 풀 향기 그날에서 오래간만에 듣는 모교의 노래를 듣고 "감사합니다. 우리 조국 동포들이여!" 하며 만족해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 개인으로서도 일생에 남는 이오 같은 추도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저에게 박경원 여사를 알려 주신 후지에 살고 있는 와다씨를 선두로 오늘 참석 해 주신 진학호씨, 신명여학교 졸업생 대표 여러분, 그리고 이 날은 위하여 도와주신 아타미 시청 직원 외 많은 분들의 협력과 원조에 의하여 거행되어진 것이므로 깊이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한국의 묘소는 모두 개개인입니다만 박경원 여사의 묘소는 아직 한국에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우리들 태양회가 박여사 조난사 70주년이 되는 내년에 박여사의 고향인 한국 대구시의 일각에 박여사의 묘소를 만들이 이 일본에서 사라진 한국 역사 속의 위인은 언제까지나 편안히 잠들게 할 생각입니다.


가능하면 여러분! 그 때 또 만나 뵙기를 빕니다.
여러분! 오늘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다음은 박경원 여사의 영령에게 외치고 싶다면서 산을 향하여 다음 문을 힘차게 한국어로 말했다.

「박경원 비행사님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타카하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경원님 요즈음 어떻습니까? 오늘은 당신 손자되는 진학호씨와 신명여학교 후배가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오늘 8월 28일 당신을 부르는 소리와 한국 노래를 들었습니까? 당신에게 드린 무궁화 꽃을 보았습니까?


오늘 당신의 기념판이 아타미시에 건립 되었습니다. 70년이 지난 오늘 일본 사람들은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탄 비행기의 날개, 당신의 용기, 당신의 생명이 오늘 한국과 일본 사람의 아름다운 다리로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경원님!


내년에는 당신이 이 산에서 사라진지 70년이 됩니다. 우리들 태양회는 내년에 당신이 태어난 고향 대구시에 당신의 기념판을 세우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당신의 영혼이여 부디 안심하고 고향 대구에 돌아가십시오.


진학호씨, 신명여학교의 후배님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박경원님 그 때 또 만납시다.


안녕!! 안녕!! 안녕!!」
 
이사장의 더듬거리는 한국어가 좋았는지 끝낸 뒤 최종덕 동창회장은 이사장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이번에 아타미시가 만든 「한국 정원」은 한일 우호를 위하여 대단히 깊은 뜻을 가지게 되었고, 「박경원 여사」의 위령식도 결코 그에 뒤떨어 지지 않을 것이다.


8월 11일은 박경원 여사가 화장되어 일본 비행학교 장으로 장례를 치루었지만 박경원 여사의 어머니, 장두례씨는 그 날 저녁 때 쯤 일본에 도착, 장례식에는 참석치 못한 것 같다. 80살이 되신 어머니는 조난 현장에는 물론 아타미시에 가지도 않고 유골을 안고 고향 대구에 돌아왔다. 그 후 69년 만에 동안 단 한 사람도 이 조난지와 입구마저도 한국 사람은 오지 않았다. 그것이 69년 만에 처음으로 박겨사의 자손과 후배들, 그리고 한국 태양회 등 약 30명이 조난 입구에서 헌향, 헌화, 모교 교가까지 제창한 것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남존여비사상이 강했기 때문에 여성 위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 16살로 일본 관헌에 의해 사라진, 지금은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불려지는 유관순, 한국 오천원 권 지폐에 담겨 있는 인물, 유학자 이율곡의 어머님이신 신사임당, 현재 일본에서 팔리기 시작한 한국의 동동주는 황진이 동동주라고 하는데 유명인이지만 황진이를 위인이라고는 말하지 않는 것같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남권에 밀려나서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도 낮아서 한국에는 여성의 위인은 적다. 이렇게 한국의 역사를 관찰해보면 박경원 여사는 틀림없이 한국 여성 제 1급의 위인이다. 이 위인의 모교 신명여학교에 가보았지만 일본인 측이 박여사의 자료를 더 많이 보장하고 있는 것 같고, 박여사를 영화화하고 싶다고 하는 프로듀서와도 몇 번 만나 보았지만 현재로서는 우리들이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듯 하다.

한국 사람들은 왜 일본 사람들이 박여사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며 놀램과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박여사는 한국 사람이다. 가까운 장래 필히 박경원 여사는 한국 여성 제 1급의 위인으로 한국 사회에 그 얼굴을 비치게 될 것이다.

우리들 태양회는 그 선시로서 박여사의 조난 입구에서 향을 피우고 꽃을 바치며 노래를 불러 드린 것은 사소한 일로 보이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남기게 될 것이다.

 

 


포토더보기▶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환영"(2)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by 관리자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환영"(2019.3.25.)

워커즈 코프 연합회 서울 태양회 방문&n…
by 관리자

기념행사의 이모저모(2018.8.6.)

행복한 순간의 미소​​​​​​​​​​​​…
by 관리자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식(2018.3.26.)

이사장님,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
by 관리자

[나눔행사] 쌀 기증(2018.2.6.)

[나눔행사] 쌀 기증(노원구 2018.2…
by 관리자

원폭평화전시관 2주년 기념행사(2017.8.6.)

원폭평화전시관 2주년 기념행사봉사단체 태…
by 관리자

(사)평화봉사단 해모음    대표자:고교목남 고유번호 : 778-82-00225 전화 : (02) 934-9828   팩스 : (02) 933-9828   이메일 : csh230@naver.com 주소 :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237다길 16(4층) 후원계좌 : 하나은행 290-910014-95105
Copyright © (사)평화봉사단 해모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