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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회 단체 표창 결정과 그 의의(태양회뉴스 12호)

관리자 2018-02-12 (월) 04:28 6년전 4547  

태양회 단체 표창 결정과 그 의의


이사장 다카하시 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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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회 이사장 찹쌀 기증식


지금 태양회에서 하고 있는 봉사활동은 태어날 때부터 신체장애를 가진 어린이에 대한 봉사활동, 또한 교통사고 등 부모를 잃은 어린이에 대한 봉사활동, 한국은 노인 천국이니까 이 도봉구(일본 토쿄라면 아타치구 근처)만 해도 70세 이상 되시는 노인이 수천 명 있습니다. 도봉구에서는 몇 백 명 전후의 노인들을 동봉시립노인복지관에서 매일 같이 급식 봉사를 하고 있는데 도봉구 자원봉사센터의 요청에 의해 태양회는 그곳에서 월 2회 자원봉사를 하며 월1회는 발마사지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태양회는 노란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도와 드리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씩씩 하고 장하므로 마치 탱크와 같다고 하여‘탱크부대’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입니다. 또 태양회에는 떠 다른 새로운 봉사활동이 증가되었습니다. 대형슈퍼에서 나오는 야채나 과일 등 각종 기업의 기부원조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는 도봉구 창동역 1번 출구에 소재하공 있는 푸드마켓 봉사활동을 서울특별시 사회복지협의회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이것을 독거노인 등 손길이 필요한 분들에게 무료로 배부하고 있습니다. 많은 물품이 트럭 등에 의해 운반되어 오면 그 물품을 적당히 분배하여 진열해 두고 1인당 5점씩 무료로 배부해주는 봉사활동으로 자원봉사 정신으로 태양회도 성심껏 봉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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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회 자원봉사자 모습들, 일명 "탱크부대"라고 불리는 봉사자들

이곳에서도 일주일에 3번 태양회 자원봉사자들이 활발하게 도와 드리고 있습니다만 또 하나 문제점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곳에서도 많은 물품 원조가 있지만 서울에서 제일 처음으로 생긴 이 푸드마켓은 이곳뿐이기 때문에 워낙 이용자들이 많아서 물품 공급이 모자랄 정도로 인기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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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청장 표창장 수여를 마치고​ 

노인이 제일 존중받고 대접 받던 한국에서도 과속화로 진보되어 가는 문명발달 과정에서 노인을 돌 볼 사람도 적어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느 한 노인은 사후 1개월 후에 발견되었다고 하는 지금부터 30~40년 전에도 도저히 상상도 못할 기사가 한국진문지상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노인들이 무료로 배부되는 이 푸드마켓에 와 보아도 쌀은 순식간에 없어져서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3년 6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1차적으로 매월 찹쌀을 80kg씩 기증하기로 하여 지난달에는 그 기증식에 다녀왔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더 자원봉사정신에 입각하여 이 푸드마켓 운영이 번창하도록 뒷받침해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외 여러 가지 태양회의 활동이 인정되어졌는지 작년 12월에는 도봉 구청장님으로부터 태양회 단체상이 표창되어졌던 것입니다. 봉사활동은 명예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그러한 상을 받는 것도 새로운 봉사활동 인구를 증가시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받는 것이 좋겠다는 권요도 있어서 박기로 했던 것입니다. 원폭피해자 협회로부터 시작하여 태양회는 단체와 개인이 받은 감사패, 표창장, 표창 기념품 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봉사활동은 명예와 칭찬 받기 위해서 하는 것잉 아니기 때문에 사전에 알 때는 거의 다 사양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회합에 초청받아 가보면 그 자리에서 갑자기 표창을 받는 일이 있어 사양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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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준비중인 태양회 자원봉사자 모습들


또 다른 이유로는 표창장을 받아 놓는 것도 좋을 듯한 생각도 듭니다. 그것은 에를 들면 지난달에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께서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그 일주일 전에 자민당의 아소우타로우씨가 한국 사람이 일본성으로 창씨 개명한 것은 일본이 강제로 시킨 것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 좋아서 했다고 하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말썽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하품격인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고이즈미 수상에게‘아소우씨는 머리가 좋다’고 인정받던 그사람이 왜 하필 한국 대통령 방일 직전에 어쩌면 이렇게도 바보스러운 발언을 했는가 하고 나는 지금까지 아소우씨의 펜이었는데 너무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한국 기자들이 모두 TV에도 신문에도 과거 수십 년 전의 일을 파헤치며 일본을 격렬하게 비난했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 사람으로서 이렇게까지 쓰라리고 괴로운 적은 없고 2년 전의 교과서 문제 때는 특히, 나는 일본사람의 특징이라고 할 정도로 인상 깊은 일본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외출을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충고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에서 표창을 받는다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증거라고 보며 다른 면에 서는 수십 년 전에 일본사람이 한국에서 범한 수많은 죄를 조금이나마 씻어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다시 말하면 일본 사람이 한국에서 봉사활동에 의하여 받은 수많은 표창은 그 숫자만큼 조금씩 일본 사람이 범한 죄를 없앨 수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현제 나는 내 딸이 한국어 선생으로 되어 매일반 한국어 시험을 보고 있습니다. 90점 이상이면 축하주, 80점 이하면 애석한 술로 한잔씩 마십니다. 최근에는 매일 밤 축하주가 연속되었지만 집안에서만 지내 던 가 외출할 때는 통역이 따르니까 90점 맞던 시험도 닷새가 지나면 또 잊어버리고 마는 현상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되어 5월 중순에 2박3일의 단신 여행으로 한국어 실력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버스로 50분 걸리는 찬안시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또 택시로 20분 달려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불러지는 유관순의 고향에 갔습니다.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 사람으로부터 7천 5백여 명이 살해당한 이 사건은 한국 사람이라면 천년 동안 잊을 수 없는 비총한 역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그곳에서 제일 재능을 발휘한 것은 16살 소녀 유관순이었습니다. 서울에서 3월1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뒤 4월1일 병천시장에서는 유관순 등이 중심이 되어 대한민국 독립만세를 부르짖었습니다만 그날 유관순의 부모는 일본 관헌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그로부터 1년 반 후에 유관순도 형무소안에서 괴로움을 당하면서 죽고 맙니다. 만약에 매일 밤 나의 한국말 선생인 나의 딸이 그러한 죽음을 당한다면 아마 나도 죽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일어났습니다.

그 유관순의 기념관에 가보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17살로 사라진 한 소녀를 위하여 준비한 토지는 5천 평이 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기념 광장은 3단으로 되어 있고 2단 째는 유관순의 작은 기념관이 있습니다. 걸어서 1분이면 다 볼 것 같은 작은 기념관이지만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과 소녀를 어떻게 고문했는가를 그름과 사진으로 기념관 안 가득히 진열해 놓았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픔 처절한 광경이었습니다. 하단의 대광장 한쪽에 16살의 유관순이 대공을 향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서 있는 동상이 잇습니다. 그 동상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날카로운 비수를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이곳저곳 견학하고 잇을때 일본어가 유창한 친절한 한국 사람과 만났는데 그분은 자가용으로 나를 이곳저곳 안내해 주시며 유관순의 생가까지 안내해주셨습니다. 이런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어찌하여 유관순과 같은 씩씩한 기품과 부도불굴한 여성이 태어났는가 하고 의아할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내가 출판한‘한일의 유광’ 속에 유관순의 부모는 병천시장에서 살해당했다고 써 놓았지만 실은 병천시장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그 장소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나를 안내해 준 친절한 한국 분에게 ‘병천시장은 이 부근에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았더니 ‘타카하시씨, 지금 달리고 있는 이부근이 옛날 병천시장입니다.’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네? 여기에는 유관순의 부모가 살해당했는가?’라고 생각하니 또 다시 나의 가슴은 날카로운 비수를 찔리는 듯한 아픔이 스쳐갔습니다.


나를 친절히 안내해준 김영석씨는 헤이질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한국의 이곳까지 오시는 일본사람은 어지간히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한국을 상당히 이해하고 있는 분입니다. 다카하시 선생님, 나는 당신과 같은 분을 내차로 안내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대단히 기쁘게 할수 있었다는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나보다 10살 연상이신 이분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악수를 청하기에 나는 대답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나는 천오백년 그 옛날에 일본에 불교를 전래해 준 옛날의 백제라고 불러지던 부여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1972년에 일본사람이 세운 ‘불교 전래의 비’가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은’이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것으로 천수백년 전에 일본 사람이 받는 은혜를 보답한다는 뜻으로 이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일본사람이 세운 비석은 그 ‘전래의 비’ 정도 되겠지요. 그 ‘불교 전래의 비’에서 주보로 3분정도 걸어가면 부여대교가 있고 그곳을 흐르는 강은 한국 3대 강 중의 하나인 백마강입니다. 그 백마강하류가‘백강촌’으로 이 역시 천수백년 전 옛날에 일본사람이 백제국을 구하려고 군대를 일으키다가 당하고만 수천명의 일본군이 죽은 장소입니다.


한일 우호를 위해서는 불교 전래의 비와 같이 백강촌에도 작은 비석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한국의 산하를 조용히 바라보면서 되새겨보니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은 역시 유관순의 고향입니다.


태양회는 올해 박경원의 기념상을 건립하지만 3.1만세 운동으로 무참하게 살해당한 7천오백 명을 위하여 유관순의 고향의 조용한 마을 근처에 일본인의 한사람으로서 3.1만세운동을 위한'위령비'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양초불 타듯이 불타올라 왔습니다. 그 불은 그렇게 간단하게 꺼지지는 않겠지요.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참회하려고 한다면 단좌하여 실상을 생각하라. 중죄는 이슬과 같고 혜일이 소멸시킨다.’


여기에 나오는 ‘혜일’이란 ‘태양’입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순식간에 산천초목과 노상의 이슬을 소멸시키는 것과 같이 봉사단체 태양회의 힘이 일본이 범한 수많은 죄 중에 하나라도 두 개라도 없애준다면 이 이상 더 다행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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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의 유관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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