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태양회 제4회 사회복지의 날에 ‘서울특별시장 표창장’ 수장(태양회뉴스 13호 > 해모음뉴스

본문 바로가기

회원메뉴

쇼핑몰 배너

한국 태양회 제4회 사회복지의 날에 ‘서울특별시장 표창장’ 수장(태양회뉴스 13호

관리자 2018-02-13 (화) 18:23 6년전 4947  

한국 태양회 제4회 사회복지의 날에 ‘서울특별시장 표창장’ 수장


이사장 다카하시 고준

3bc5e00c13d212c3194e84ab226ca15e_1518513669_0345.jpg

서울시장 표창장을 받는 이사장님​

우리 한국 태양회가 지난2003년 9월 3일 서울시 마포문화체육센타에서 거행된 ‘제4회 사회복지의 날’을 맞이하여 사회봉사활동에 대한 현저한 공로가 인정되어 서울특별시장표창을 수상하였습니다.


아직도 태양회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만, 여러분들과 함께 수상의 영광을 기뻐하며, 이 기회에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경과 등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태양회는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제가 일본 군마현 혼노지의 주직으로 있을 때 불교사상에서 보는 봉사정신을 가르치며 방향성을 제시하고 신도의 한사람을 회장으로, 나는 이사장이 되어 발족시킨 것입니다.
나는 그 때 일본에 와있는 한국인 유학행 5명의 일본에서의 보증인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사람인 죠지대학의 대학원생이 어느 날 나를 찾아와서 “지금 죠지대학에는 한국인 유학생이 몇 십 명이 있는데 일본에 유학한 기념으로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나무와 작은 기념비를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학생들 뿐이라 어려우니 죄송스럽지만 조금만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하기에 그 뜻이 너무도 훌륭하다고 생각되어 “알았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하고 얼마간의 돈을 그 학생에게 주었습니다.


수개월 후 그 학생이 다시 찾아와 “도와주신 덕택으로 잘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은 저희들의 조그마한 감사의 표시입니다.”하며 내놓은 것은 가로와 세로가 15cm정도의 돌로 만든 감사패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나와 태양회에게 수여된 제1호의 감사패인 것 같습니다.


그 후의 예는, 혼노지 개창 700주년을 맞이하여 일부러 동경의 고서적가게를 찾아가서 헌책이지만 700년의 기념으로 700권의 책을 구입하여 오오고마찌 초등학교에 보내 기증한 일이 있는데 몇 개월 후에 교장선생님의 감사편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 때 한국 태양회는 한국에 있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본격적인 도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사는 옆 동네에 이세자키시의 원폭 피해자 이세자키 지부장이 있었는데, 한국의 피해자 원조는 시작했으나 피해자들의 실태등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으므로 이지부장 댁을 몇 차례 방문하였습니다.


그분 댁은 일본의 보편적인 가정으로 자동차 2대와 가전제품은 거의 모두 갖추고 잘 살고 있는데, 내가 본 한국 합천의 피해자 가정에 비하면, 잘은 모르지만 재벌 같은 생활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지부장이 말하기를 “다까하시씨! 다음달에 우리는 국회의사당에 가서 원폭원호법의 입법을 인증하라고 데모를 하여 후원금을 더 받아내려고 합니다.”라고 하기에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십시오.”하고 대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의 태양회원들이 12월 30일경 연말 이웃돕기 봉사활동으로 10만원, 20만원씩 합천 피해자들의 가정을 한집, 한집 방문하여 “작은 돈이지만 이것으로 새해에 술이라도 한잔하십시오.”하며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피해자들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인으로서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합천의 산속에서 일도 없이 생활하는 그분들에게는 커다란 돈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연말의 한창 바쁜 때에 일부러 일본에서 이 먼 합천의 산촌까지 돈을 가지고 찾아와 준 성의에 대한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었겠지요.


일본의 사회복지제도는 법제상으로 완벽에 가까우며 노인층이나 피해자들에게 만 엔이나 이만엔 정도 기증하여도 고개 한번 숙이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피해자는 일만 엔에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보아도 봉사활동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필요하지 않는가?


이러한 이유만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이 시작된 것은 ‘남자의 일생의 일이 이것만은 아니다’라고 생각되어 9년 전 혼노지 주직의 직책을 사임한 후부터입니다.


봉사활동의 정신, 사회봉사활동에 종사하는 자는 명예라든가 영예, 또는 사리사욕과 표창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태양회의 본부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기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나는 그 이상론이나 구상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방안으로 ‘이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즉 회원들에게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고 말은 하지만 직접 하지 못하고 힘든 일을 직접 하는 것을 모두 회원들이었습니다.


묵묵히 충실하게 실천하는 회원들, 이분들께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이분들에게도 기쁨을 안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그 기쁨의 하나가 이번과 같이 여러 관계기관으로부터 받는 ‘감사의 글’이라던가 ‘감사장’이며 ‘감사패’인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지난 9년동안 여러 곳에서 태양회에 보내준 감사장과 감사패는 모두 50개가 넘을 것 같습니다. 그 50개중에서 최고의 상이 서울특별시장으로부터 수상 받은 이 표창장과 상품이 되겠습니다.


한국 태양회본부는 서울시의 도봉구(현재는 노원구)에 두었습니다. 이 도봉구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시설이 있으며, 또 노인들에 대한 노인종합복지관이 잇어 이곳에서는 매일 점심 식사를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준비와 뒤처리를 하는 일이 대단히 많아서 이것을 구의 여러 봉사활동단체가 협력하고 있습니다. 태양회도 3년 전부터 이 봉사활동에 참여하였는데 ‘태양회’ 글이 쓰인  상의를 입은 부인부들이 씩씩하게 활동을 하여 많은 노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이 신속하고도 활동적인 우리 태양회의 부인부들에게 붙여진 별명이 있는데 그것은 ‘탱크부대’입니다.


그리고 금년 3월에 서울시복지협의회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푸드마켓을 창동역에 마련했습니다. 여기에 대량의 물량이 운반되는데, 그것을 준비 진열하는 사람, 나누어주는 사람, 뒤처리를 하는 사람 등이 필요하므로 일주일에 3일에 태양회가 직접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판매하고 남은 물건이나 음식들이 무상으로 지원되는데 그중에서 지원이 모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쌀입니다. 저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이 쌀이 제일 구하고 싶은 물품입니다. 그래서 매월 80kg의 찹쌀을 내년 말까지 이사장 개인이 매월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태양회는 그동안 수많은 봉사활동과 십 수 년 전부터 시작한 한국의 원폭피해자를 후원해온 공이 인정되어 이번에 서울시장 표창장을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


시민이 1천만 명이 넘는 서울시에서 일 년에 한 번 우수한 사회봉사자에게 수여하는 표창장인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표창이 수여되는 가운데 단상에 올라가 표창장을 받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른 분을 대표로 받도록 주선했습니다. 그러나 매월 사비로 쌀을 지원해 주시는 이사장께서 직접 받으시는 것이 좋다는 의견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제가 단상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쌀’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10여년 전, 1592년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약 16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였습니다. 제2차 출범은 14만 명으로 모두 30만명이 7년 동안을 걸쳐서 한반도에서 전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 조선의 명장 이순신 장군이 남해에서 일본군을 대패시키자 해상이 봉쇄되어 일본으로부터 군수물자라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본병들은 한국의 쌀과 각종 곡식, 소, 개, 닭은 물론이고 고양이까지 잡아먹어 전쟁이 끝난 뒤에는 동물들이 모조리 없어지고 마는 대 참상을 일으켰습니다.


그 후 1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청에 의해 조선과의 교린이 회복되어 일본을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가 1607년 조선 14대 선조왕시대로 총504명이었습니다.


선조왕은 일본의 국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국서를 보냈는데, 그 문중에 ‘귀국은 까닭 없이 군사를 일으켜 잔혹한 화란을 일으키고 선왕의 능묘까지 욕되게 하였습니다. 귀국과는 하늘은 같이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29세의 히데다다는 ‘세력과 이익의 교제는 고인의 수치이며, 오직 진실 된 신의를 가지고 마음의 결정을 한 것입니다’라고 답하여 이후 도쿠가와가 망할 때까지 12번 조선통신사(한국은 일본통신사)는 한일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상 유례없는 성의와 성실로서 우호의 외교를 계속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쿠가와가가 망하고 불과 40년 후인 1910년에 일본은 압도적인 무력을 배경으로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한국은 또다시 일제시대 36년과 히데요시의 출병 7년으로 모두 43년 동안이나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이 43년 동안 일본이 한반도에서 탈취한 쌀과 곡식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것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몇 백만, 몇 천만 톤이 될지 모릅니다.


수 십 년, 수 백 년 전에 일본인들이 쌀을 빼앗아갔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굶주리며 쌀밥을 먹고 싶어 했을까? 그리고 나는 지금 한국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쌀밥을 먹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자 맛있게 먹던 저녁밥이 목에서 걸려 잘 내려가지를 않았습니다.


식사 후 내방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계속 흘러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나의 처가 다가와 “당신이 참석하지 않으면 태양회의 회원들이 슬퍼할 것입니다.”라고 권하는 말을 듣고는 “그래, 그들을 위해서라도 가자.”하고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식장에는 한복을 입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행사장은 의외로 커서, 1년에 한번 사회봉사자를 표창하는데 이렇게 성대히 하는가 하고 놀랬습니다.


접수처에서 저에게 ‘한 말씀 써 주십시오.’라고 하며 작은 목판을 건네주었습니다. 이것은 흑판에 붙여 식장으로 옮겨 대형스크린에 비춰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전교대사의 글을 빌려 ‘한 모퉁이를 비추는 따뜻한 마음을...... 태양회 코우쥰’이라고 썼습니다.
나누어준 팸플릿도 식이 시작되기 직전에 대형 스크린에 비춰지고 영어로 ‘Heart Together Festiver'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자 뒤를 이어 시각장애 청소년 이십 여명의 브라스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그중에 목금을 치는 소녀도 있었는데 그녀의 연주모습이 스크린에 보여 졌습니다. ‘어떻게 앞을 못 보는 소녀가 목금을 정확하게 칠 수 있을까? 무척 궁금하였는데 그만큼 연습을 많이 하였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 모습에 대단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3bc5e00c13d212c3194e84ab226ca15e_1518513727_4986.jpg

3bc5e00c13d212c3194e84ab226ca15e_1518513815_8046.jpg
서울시장 표창 후 부인부와 함께 기념촬영


다음에는 표창식 순서가 되었는데, 종목별로 ‘사랑의 시민 상’10명, ‘서울특별시장 상’49명, ‘사회복지협의회장 상’50명으로 모두 109명이었고 우리 태양회는 두 번째의 ‘서울특별시장 상’이었습니다. 이 49명도 여러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우리들은 7명이 단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솔직히 나는 집을 나설 때, 그다지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없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을 했는데 시상대 앞의 7명중 나를 포함한 3명에게 시장께서 직접 표창장과 상품을 수여하신 것입니다.


결국 시장이 59명, 협의회 회장이 50명을 표창하셨지만 직접 받는 것은 15~6명 정도였습니다. 수상자들 중에도 태양회를 어떻게 생각하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음악가들이 한 자리를 마련하여 연주를 하였는데 서울시협의회에서 이 날 행사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며 준비한 것 같았습니다.


모든 행사가 성대히 끝나고 각 수상자들과 단체들이 식장의 정면과 입구에서 감사장과 꽃다발을 들고 기념촬영들을 하고 있었는데 태양회도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버스 1대를 동원하는 등 약60여명이 참석하여 제일 인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15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행사장에는 서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개인봉사자와 축하를 해주기 위해서 참석한 응원부대도 많이 보였습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시간을 빼앗겼기에 이제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승용차에서 처가 휴대전화를 받고 통화를 하더니 도착한 곳은 태양회 본부였습니다. 오늘의 이 기쁨을 회원들 모두가 다시 한 번 함께 나누자고 하며 집으로 그냥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벌써 음료수와 함께 요리들이 준비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보내자’고 생각하고 나도 좋은 술에 취하는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서울시의 팸플릿에 게재되어 있는 ‘태양회의 공적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태양회 (대표 다카하시 코우쥰 이사장, 남, 62세, 단체)
○ 1989년도에 이사장 다카하시 고쥰에 의해 출범한 태양회는 한국 원폭피해자에 대한 원조를 봉사활동으로 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사회복지시설 봉사활동과 후원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음
○ 특히, 올해 3월에 개소한 저소득층을 위한 서울 푸드마켓에서 주3회(월, 화, 수) 정기적으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수행하여 푸드마켓 운영에 크게 기여함.
그 밖에 1998년 4월부터 현재까지 노인정 방문, 1989년 8월부터 현재까지 원폭피해자 자금원조 및 방문위로 봉사활동,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월1회 자혜원 방문봉사활동(청소, 목욕, 간식지원), 2001년부터 현재까지 방아골 종합사회복지관과 도봉노인종합복지관에서 활발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진행함.

 

 


포토더보기▶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환영"(2)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by 관리자

일본 워커즈 코프 연합회, "태양회 방문 환영"(2019.3.25.)

워커즈 코프 연합회 서울 태양회 방문&n…
by 관리자

기념행사의 이모저모(2018.8.6.)

행복한 순간의 미소​​​​​​​​​​​​…
by 관리자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식(2018.3.26.)

이사장님,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
by 관리자

[나눔행사] 쌀 기증(2018.2.6.)

[나눔행사] 쌀 기증(노원구 2018.2…
by 관리자

원폭평화전시관 2주년 기념행사(2017.8.6.)

원폭평화전시관 2주년 기념행사봉사단체 태…
by 관리자

(사)평화봉사단 해모음    대표자:고교목남 고유번호 : 778-82-00225 전화 : (02) 934-9828   팩스 : (02) 933-9828   이메일 : csh230@naver.com 주소 :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237다길 16(4층) 후원계좌 : 하나은행 290-910014-95105
Copyright © (사)평화봉사단 해모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