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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째의 야유회(태양회뉴스 1호, 1998, 5. 31.)

관리자 2018-01-31 (수) 08:00 6년전 3898  

제10회째의 야유회


집필 - 다카하시 고준


봉사단체 태양회가 한국 피폭자 합천지부의 사람들에게 10년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의 자식들에게 원폭의 비참함을 보여주고자 생각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데리고 갔었으나 한국에도 피폭자가 있다라는 사실을 알고서 합천을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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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열리고 있는 합천지부 야유회가 예산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약간의 원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한국의 피폭자와 결연이 되었습니다. 그때 나의 마음속으로는 한국 피폭자 합천지부에 원조하는 것은 1회로써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무엇 때문인지 10년이나 계속된 것일까, 그것은 안 지부장의 한마디가 나의 가슴을 심하게 자극한 것이 아닌가 하고 지금 새삼스럽게 생각됩니다.

처음 합천지부를 방문하고 돌아오려고 하였을 때 일본인의 외교사령으로서 ‘그럼 또다시 오겠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나의 처가 한국이이며 처의 고향과 합천이 가깝기 때문에 또 올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돼, 가벼운 기분으로 그렇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대 부처와 같이 상냥한 얼굴을 한 안지부장이 상당히 심한 말을 한 것입니다. ‘사카하시님, 이곳에는 일본인이 많이 찾아와서 또 오겠다고 말하고 돌아가면 두 번 다시 찾아온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고 말하면서 합천을 찾아온 일본인의 명찰이 기록철 두툼한 노트를 어떠냐고 말할 것 같은 표정으로 두 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이토록 많은 일본인이 찾아왔는데 진짜 두번 다시 오지 않았던 것일까 하고 놀람과 동시에 진실로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은 일본인의 수치인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속담에 ‘不言實行(불언실행-말하지 않고 행한다)’말이 있듯이 나는 ‘有言實行(유언실행)을 주지(主旨)로 해서 인생을 걸어가고자 생각해온 것입니다. 즉 ’말한 일은 해낸다‘라는 것이지만 이는 젋었을 무렵 자신의 목표나 의지를 선명히 하므로 해서 어찌되었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고 자신을 몰아넣은 생활방식으로써 나는 인생을 지내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외교사령으로서 ’또 옵니다‘고 말한 한마디에 ’일본인 모두가 그렇게 말하지만 두 번 다시 찾아온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말에 나의 반항정신과 같은 것이 뭉게뭉게 머리를 치겨던 것입니다.

나는 또 온다고 말한 이상 반드시 오는 것이 나의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나를 다른 일본인과 동일 취급하지 말아 주시요 하고 말로서는 내놓지 않았으나 그러한 마음이 뭉게뭉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해 그 또 다음해로 나의 사회적 입장이라 말할까 직업상이라 말할까 나 자신은 한국에 건너올 수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또 온다’고 말한 이상 나의 지인, 한국의 지인 등을 통하여 연 2회 위문지원을 계속해 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4년 전 나의 직업 상이라던가 지위를 일체 버리므로 해서 그때까지의 속박에서 풀려나 한국에 자유로이 올 수가 있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금번 합천의 피폭자와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것은 4회째가 됩니다.(실은 8월 6일이 있으므로 7,8회가 되지만) 야유회만도 4회나 함께 먹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면 이제는 낯익은 사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금번에도 야외의 광장에서 빙글빙글 하면서 맞이해 주었습니다. 피폭자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이제는 50년 전의 지인과 같은 상태입니다. 3년 전부터 노래를 부른 사람에게 일본에서 상품을 가지고 왔으나, 30~40명분을 가지고 온다고 하면 상당히 무겁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백화점 등을 바라보면 일본제품과 하등 변함이 업어져 버렸습니다.


특히, 금년은 한국 경제가 많이 아니다라는 것으로 해서 생활용품을 가라오케의 상품으로써 그를 마산에서 사들였습니다.

5월 3일인 당일은 석존의 탄생일이므로 도로가 집체 될 것으로 7시에 부산을 출발하였습니다. 10시 20분경에  현지에 도착, 이미 200명분의 도시락이 도착돼 있어 먹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10시 40분에 마산에서 가라오케의 상품이 도착돼 그것을 책상위에 나열하여 안지부장의 인사말, 한국피폭자협회 부회장의 인사말, 한국태양회 회장의 인사와 함께 금일 소요되는 경비인 지원금을 수교하였습니다. 이어서 나의 인사말 될 수 있는 한 부드러운 말을 골라 한국어로써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한국인피폭자의 입장에서는 피폭이라는 현실은 슬프고 고되고 분할 것이지만 그러한 마음을 풀기 위해 오늘의 야유회가 있는 것입니다. 어렵고 긴말은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즐겁게 밝게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놀아주신다면 좋은 것입니다. 나의 짤막한 인사말을 한 후 식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가라오케 대회시간이 되었습니다.

일본인 같으면 체면을 생각해 노래를 부르지 않으나 한국 사람은 체면을 하지 않는가라는 일본인적인 감각과는 달라서 진짜로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그리고 춤을 춥니다. 30명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면 한사람이 3분이 걸린다고 보고 약 1시간만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라고 계산해서 한국에서 산 생활용품 30명분과 일본의 야지마씨의 호의에 의해 보내진 일본의 물품 10명분과 함께 40명분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다음에서 다음 사람의 노래시간이 10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찌되었던 가라오케의 전주가 있는 셈도 아니고 노래할 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뒤 상자에 넣어진 세제라든가 간장병 같은 것부터 사라지고 있었으나 1시간이나 지날 무렵 60명분의 상품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최후에는 템포가 빠른 음악으로 사람들이 춤을 추었는데 나도 그 춤의 테두리 안에 끌려 들어가게 돼버렸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자연스레 손이나 발이 움직이는 것이겠지만 나는 좀처럼 그렇게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 빠른 템포가 5분이나 계속돼 역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노인들의 지속적으로 춤추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래와 춤이 끝날 무렵 한 노인이 찾아와 내개 말하기를, 자신은 18세 때 피폭하였습니다. 그 이후 전신이 마비돼 일을 할 수가 없어 휠체어 생활로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어 분함과 불만에 일본으로 건너가 누구라도 좋으니 맞부딪쳐 보고자 오랜 세월 동안 생각해 온 것이라고 하면서 겨우 일본인을 만났으나 나의 기분을 알 수가 있느냐 하고 나에게 윽박질을 해왔습니다. 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 손을 만져보니 완전히 탈력한 손으로써 그 탈력된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말하였습니다. 나는 한국어로 알겠다고 몇 차례나 말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피폭자들에게 10년 동안 원조를 하면서 나도 약간은 일본인 및 한국인의 피폭에 관한 책을 읽고서 실태를 알게 된 것입니다. 한국에는 한(限)의 문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한 한에 닮은 한국ㅇ린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서 나도 도락(道樂)으로써 원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10년 동안이나 원조를 계속되지만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 휠체어의 노인은 전후 53년이므로 71세가 된 것일까? 연령보다 젊어 보였으나 피폭으로 인해 청춘도 인생도 탈취당해 18세 때부터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움직이기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50유 여년 한이 산과 같이 높이 쌓였다 해도 불사의는 아닌 것입니다. 전번에 38세인 피폭자 2세로부터 면전에서 일본인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고 말한 것이 새삼 생각해보니 나는 그 노인의 휠체어 앞에 땅에 조아려 엎드리고자한 심경으로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나의 한국말에 그 노인은 ‘아~ 나는 50몇 년 동안 지금까지의 마음의 고됨이 날아가 버리고 온랜 만에 속이 시원해졌다고 웃고 있었으나 진심은 울면서 일본인이 나에게 항의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기는 하지만 금번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노래하는 노래는 한국의 고전 민요라 말하는 것일까, 한국통인 나도 1회도 들은 일이 없는 노래가 차례차례로 불러져 그 노래만으로도 전부 모여진다면 한국고전음악의 대집성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습니다.

한국의 판소리라 말하는 일본의 민요를 더한층 사서시로 한 것이 있습니다. 판소리는 사서시인 것이라고 책에서 읽었으나 나의 입장에서 한다면 서정시인 것입니다. 금번의 야유회에서 불러진 것은 대부분이 고전 민요의 유일한 것이지만, 그 중에 판소리풍인 것이 두 세 개가 있었습니다. 그 판소리도, 민요도 한국인의 선조가 고됨이나 슬픔을 꾹 참았을 때 그 안타까운 마음을 달이나 구름이나 바람에게 물으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정히 한의 문화를 바라보는 생각이었습니다.

5월 3일 야유회는 노래하고 춤을 춘 즐거운 하루는 아니었으나 한의 문화를 지닌 한국인의 마음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 위에 금번 4월 26일에 사천시의 태양회  경남회관 발족 때 고아원 2개소와 두 사람의 한국인에게 5월 3일의 피폭자 야유회에, 그리고 6월 7일 북한이 뚫었다고 말하는 제4갱도를 지키는 7162부대 병사위문, 합계 3개소에 8백만 원이 소요됐습니다. 그 중에서 일본 태양회에서 17만엔(약 170만원), 한국의 태양회로부터 약 270만 원 등으로 따스한 뜻이 보내졌으며, 3개소 공히 인간이 인간을 생각하는 따스한 교류의 장이 생겨난 것입니다.

명세에 대해서는 언젠간 발표하겠지만 잉사장의 입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태양회 회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바입니다.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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