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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11호) 일본에 있어서 한국인의 근원

관리자 2019-10-11 (금) 18:43 4년전 977  

 

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고려신사, 이번 일본 방문동안에 결심을 하고 이케부쿠로역에서 전차를 타고 고려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내려 놀란 것은 역전광장에 한국의 시골길에서 본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쓴 마을의 이정표나 수호신 역할을 하는 푯말이 나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이곳에는 고려천이 있고, 고려 관공서, 고려 초, 중학교 등이 있었는데, 역에는 안내소나 택시 승강장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길 건너편에 있는 약국에 가서 물어보았다. 역 뒷길 오른쪽에 메밀국수 식당이 있고 왼쪽에는 라면 가게가 있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메밀국수 식당에 들어가 고려신사의 위치를 물었다. 걸어서 30분, 택시는 10분 정도 걸린다고 하여 튀김 국수를 먹으면서 택시를 기다렸다.
왜 고려신사에 가고 싶은가? 목적은 두 개다.
하나는 한국여성비행사 제1호라고 할 수 있는 박경원(朴敬元)이 고이즈미 전 총리대신의 조부인 마타지로 씨와(당시 체신대신)과 고려신사에 왔다는 말이 있다.
박경원이 처음 고이즈미 통신상과 만난 것은 1931년으로, 당시 여자 2등 비행사는 3명 뿐, 에어걸(현재의 스튜어디스) 3명과 함께 제국호텔에서 만난 것이 처음이다.
체신의 체는 「물건을 보내고 운반한다」는 것으로, 지금부터 80년 전、비행기가 겨우 이 세상에 나올 무렵 유럽에서는 하늘을 난다는 생각이지만 일본에서는 물품을 수송하는 것이기에 체신대신이라 하고, 하늘을 담당하던 총책임자가 전 고이즈미 총리의 조부이었다.
이 사람은 「문신 대신」이라고 하여, 등에 문신이 있다 하는데, 하늘을 더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어 비행기에 관계되는 6명의 여성을 제국호텔에 초청한 것이다.
이 석상에서 제일 나이도 경험도 많은 박경원이 고이즈미 대신에게 장래 하늘의 일에 관한 의견을 말하고 이미 신청해 둔 비행기의 불하를 신속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그리하여 항공국에서 연락이 와서 살무성호가 박경원에게 왔다.
다른 일본 여성비행사에게는 벌써 불하되어 있었지만 박경원은 조선인 탓인지 2년 이상 불하 되지 않았던 것이다.
박경원의 비행기 불하가 빨라진 것은 체신상이라고 하는 힘있는 분의 역할이 있지 않았나 하는 질투의 소문이 두 사람을 고려신사까지 갔다는 식으로 된 것이라 한다.
군마현에 다호의 비가 있고, 한반도에서 온 귀화인은 500명을 하나의 군으로 만들었다 하는데, 고려는 1,799명이 천황의 칙명에 의하여 관동으로 이동하여 관동주변을 개척해 줄 것을 부탁받았다. 그 중심자가 고려왕 약광이고, 초대 약광이 서거한 후 고려신사가 세워져 대대로 그 자손이 신궁주로 되어 있고, 한국인 평론가 김달수 씨가 고려신사에 왔을 때는 58대를 이어받은 고려 명진(明津)씨가 보여준 족자, 내용은 다음과 같은 한문으로, 그 안에는 박경원의 이름이 보인다.

寄朝鮮飛行家朴敬元嬢         (기조선비행가박경원양)
祖国朴嬢巾椢雄駕楊雲際奪天工 (조국박양건국웅가양운제탈천공)
雞林聞昔飛機在伝説今和非架空 (계림문석비기재전설금화비가공)

전술한 바와 같이 박경원이 고이즈미 대신과 처음 만난 것은 1931년이고 그로부터 2년 후 1933년 8월 7일、만주 친선비행이라는 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하네다공항을 출발한지 50여분 후에 아타미의 구로타케에서 추락하여 생을 마감한다.
고이즈미 대신과 박경원이 고려신사에 갔다고 하면 1931년 4월부터 8개월 사이이다. 왜냐하면 와카즈키 내각의 총사직으로 고이즈미 대신도 사임했기 때문이다.
만약 두 사람이 고려신사에 왔다면 무엇을 타고 왔는가? 아마 자동차일 것이다. 이미 박경원은 그 당시 자동차 면허증은 가지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려면 먼저 자동차의 운전기술이 그 전제조건이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왔을까?
그것은 박경원의 이름이 들어간 족자의 시작이 「조국」이다.

대대로 고려왕 약광(若光)의 자손이 신궁주를 맡고 있는 고려신사는 지금도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수호탑이나 오래된 조선양식의 불탑 등을 볼 수가 있다.
일본에 살면서 고향의 냄새를 맡으려면 고려신사에 가라. 박경원은 이곳에 와서 고향인 대구에 돌아간 기분을 느낀 것이 아닐까?
그리고 놀란 것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알루미늄으로 된 팻말에 고려 신궁을 방문한 황족의 이름이 10명 넘게 나란히 기록되어 있고, 제일 근래에 온 황족은 평성천황 황후 양 폐하로서, 퇴좌 하기 1년 전에 온 것이 기록되어 있다.
속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고려 약광은 이후 계속하여 황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실은 나는 박경원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기 위하여 상당히 많은 원고를 써 두었다. 그때는 박경원이 고려신사에 왔다는 아무런 확증이 없어서 이 부분을 넣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김달수 씨가 박경원에 관한 족자를 본 것을 발견하고 고이즈미 대신은 어떻든 간에 박경원은 고려신사에 온 것은 분명하다. 이것으로 또 하나 박경원의 짧은 인생의 한 장면을 알 수 있어서 고려신사에 온 것이 만족스럽다.
여기에 또 다른 과제는 평화를 쭉 생각하다 보면 「평화」의 전제에 「우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한국은 반일 감정이 한창이며 일본도 심각한 혐한론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에 관심을 가진 이래 이렇게까지 한국과 일본이 서로 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처음 본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국경없이 자유롭게 드나들던 시대가 있었다. 그 하나가 불교 전래부터 이 고려왕 일족이 일본에 귀화한 때부터 양국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우호 관계를 처음 볼 수 있다.
한일 양국은 반일 반한의 역사보다 호일 호한의 역사를 찾아내어 그 옛날의 우호를 현시대에 되돌려서 양국이 우호에서 평화의 유대를 맺어갈 때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사이좋았던 양국의 우호의 역사를 여기서 보았다. 언젠가 조금 더 조사하여 한일우호를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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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기념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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